[광화문에서/홍권희]이번엔 민영화 괴담?

  • 입력 2008년 5월 25일 20시 05분


2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공기업 민영화 반대 집회에서 민주노총은 민영화를 하면 관련 서비스요금이 올라 국민이 고통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풍선에 ‘전기, 가스, 물 사유화’ 등을 써놓고 “반대”를 외쳤다.

집회에서 강기갑(민주노동당) 의원은 “공기, 물 등을 돈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돈 없는 사람들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조물주께서 풍부하게 주셨다”면서 “공공부문은 (국민의) 삶에 지장이 없도록 (역할을) 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재벌과 (민간)자본에 넘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 강 의원이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말은 ‘6월부터 하루에 14만 원을 내고 물을 사용한다?’는 ‘수돗물 괴담’을 연상시킨다.

괴담은 ‘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은 285L로 수돗물로는 170원 정도인데 기업이 생산해 파는 물을 이용하면 L당 500원이므로 어림잡아도 하루에 14만2000원이 될지 모른다’는 내용이다. 마시는 생수로 샤워, 세탁, 청소를 하는 경우를 상정해 사용량과 단가를 곱하고는 국민 부담이 ‘800배 이상 늘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물산업 지원법안에 반대하자’는 주장이 담긴 ‘수돗물 민영화 반대’ 포스터는 이처럼 엉터리여서 시민단체들도 외면했던 것인데 인터넷 공간에선 여전히 살아 돌아다닌다.

정작 정부는 상수도를 민영화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다. 환경부는 이 법안의 내용에 대해 ‘상수도 소유권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갖는다. 민간은 수도시설 관리권을 갖는 법인에만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물값이 내려갈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사실과 다른 가정(假定)들을 근거로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포스터의 충격적인 메시지가 민영화 전체에 대한 심정적 반대논리로 힘을 얻는 게 현실이다.

‘광우병 괴담’ 사태에서 보듯, 정부는 인터넷의 여론 오도(誤導) 메커니즘까지 염두에 두고 국민 설득 전략을 짜야 하는 시대다. 민영화에 따라 공공부문 종사자가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을 구조조정이니 인원 감축이니 운운하는 이른바 ‘해고 괴담’ 같은 것이 민심을 불안하게 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10년 가까이, 특히 노무현 정부 5년간 전성시대를 누린 공기업들은 민영화 무산을 위한 ‘전투’에 나섰다. 일부 공기업은 작년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해 왔다. 이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만든 주장들은 괴담 소재로 최고다. 해당 공기업의 용역을 받아온 일부 전문가는 공기업 살리기 논리를 개발하는 등 지원에 나선다. 어떤 공기업은 관련학과 교수 대부분을 우군(友軍)으로 확보해 놓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공기업을 관할하는 부처들도 팔다리를 잃는 격이어서 민영화에 소극적이다. 이들 부처 공무원들이 괴담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하기야 공기업이 정부부처의 인사 숨통을 터주고, 퇴직 공무원들에게 ‘인생 이모작’을 가능케 하는 존재이니 공무원들이 민영화에 반대할 만도 하다. 그러나 공룡처럼 비대한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판을 칠수록 다른 납세자들의 부담만 커진다.

‘광우병 괴담’에 이어 ‘민영화 괴담’이 공기업 민영화 반대 여론을 증폭시키기 전에 정부는 민영화가 다수 국민에게 득이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허구한 날 여론전(戰)에 무너지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