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종진]한국판 애플 나올 때도 됐는데

  • 입력 2008년 5월 2일 02시 59분


국내 정보기술(IT)벤처기업을 대표하는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의장은 저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을 통해 “10년을 내다보며 살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계획을 세우라. 그렇게 살다 보면 자신 스스로 인생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도전에 달려 있다. 한국형 빌 게이츠가 되려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과 한국판 애플사를 만들겠다며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아질 때 우리의 내일이 밝아질 수 있다.

벤처거품 붕괴 후 창업열기 시들

하지만 최근의 현상은 그렇지 못하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미래의 삶을 찾아가고자 CEO 자리에 도전하는 사례가 확연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공계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고 있다. IT벤처기업의 창업사례만 살펴보더라도 2005년 3941개에서 지난해 3380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

안 의장은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에 와서 사업을 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물론 IT기업이 겪어야 하는 시장의 불공정 관행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벤처기업인은 그의 말을 벤처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로 공감하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부풀던 2000년 당시 많은 젊은이가 창업에 도전했다. 그 가운데 한국의 빌 게이츠로 각광받던 인물도 더러 있었다. 한국판 애플사도 하루아침에 만들 듯 호언하는 젊은이도 나타났다. 분위기에 젖은 투자자도, 언론도, 벤처를 모르는 일반 국민까지 열광에 휩싸여 불과 3년 전 일어난 외환위기 사태를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열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창업에 도전했던 많은 젊은이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고스란히 후배들의 반면교사로 작용했다. 특히 창업에 실패한 선배들이 어음 한 조각 회수하지 못하면 영원히 신용불량자로 살아가야 하는 살벌한 현실을 후배들은 지켜보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창업이 활성화될 까닭이 없다.

벤처 거품 붕괴로 투자환경도 대폭 바뀌었다. 2000년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된 벤처캐피털이 무려 140여 개였다. 에인절투자 모임도 수백 개에 달해 정기적인 에인절클럽 대표자 모임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캐피털도 줄고, 에인절투자모임은 명맥을 유지하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창업도 투자도 줄어들자 벤처 생태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술개발 능력이 있어도 선뜻 창업에 나서지 않는다. 캐피털은 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한다.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털의 창업 3년 미만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36.8%에 불과하다.

최근 매출 1000억 원 이상인 기존 벤처기업이 100개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창업벤처의 대박신화가 자취를 감춘 까닭은 벤처 생태계가 무너진 탓이다. 따라서 창업과 투자 활성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거둘 수 없다.

IT투자 활성화 대책 내놔야

특히 IT기업과 같은 기술 중심 벤처기업에 대한 창업과 투자 활성화 방안은 곧 경제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듯싶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IT분야 기업경쟁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관련 기업 가운데 이미 글로벌 리더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도 많다. 이들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관련 기술 개발 능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많이 창업해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한국형 글로벌 IT기업이 탄생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필자는 창업과 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잘 만들어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우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10년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백종진 벤처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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