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다고 되나요?” 물가의 항변

  • 입력 2008년 4월 3일 03시 00분


“또 올랐나요?”1일 서울 광진구청 물가모니터링 요원인 송점선 씨(오른쪽)가 구내 노유1동 노룬산시장에서 직원에게 배추가격을 물어보고 있다. 손영일 기자
“또 올랐나요?”
1일 서울 광진구청 물가모니터링 요원인 송점선 씨(오른쪽)가 구내 노유1동 노룬산시장에서 직원에게 배추가격을 물어보고 있다. 손영일 기자
《“지난주보다 좀 올랐네요.”

서울 광진구청 물가모니터링 요원 송점선(45·여) 씨가 가격표의 수치들을 조사표에 옮겨 적으며 말했다. 제일쌀상회 이순화(55·여) 씨는 “워낙 들어오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라며 말을 흐렸다.

이 씨는 “단골로 사 가는 밥집들이 ‘전에 팔던 값으로 해 달라’고 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나도 난감해”라고 말했다.

“이번 주 20kg에 5만6000원인 철원오대산 쌀이 다음 주에는 5만7000원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 씨에게 송 씨는 “그래도 사정이 괜찮아지면 다시 값 낮추실 거죠”라며 당부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 상인들 “우리도 값 내리고 싶다”

송 씨와 같은 모니터링 요원 8명은 광진구 재래시장 6곳과 할인마트 2곳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생활필수품 물가조사를 한다. 1일이 조사를 하는 날. 송 씨는 작년부터 자원봉사 차원에서 실비만 받고 물가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했다. 주로 재래시장인 구의시장과 노룬산시장, 중곡제일시장에서 농축산물 가격을 조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초 ‘서민생활 안정대책’ 실천계획 중 하나로 지방자치단체 물가모니터링 요원을 활용해 물가가 오른 품목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 소비자단체도 참여시켜 현황을 파악하고 물가관리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막상 시장 상인들은 송 씨의 가격 조사를 ‘당국의 물가관리 협조요청’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사 오는 값이 올랐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하소연이 많았다.

중곡제일시장의 한 생선가게 주인은 “값을 올리면 손님이 줄어든다는 걸 우리가 모르겠느냐”며 “손님이 많이 와 가게가 북적대는 게 우리도 좋다”고 말했다.

노룬산시장 노룬산유통주식회사의 정상용 과장은 “요즘 물가 오르는 건 개별 시장이나 가게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국이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이런 모니터링 활동이 물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진 않다”고 말했다.

광진구로서도 가격을 올린 점포에 제재를 가하거나 물가 안정을 위해 애쓴 가게에 포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물가 안정에 협조한 점포를 뽑아 연말에 20L짜리 쓰레기봉투 묶음을 전달하는 정도.

광진구 지역경제과 신재익 유통관리팀장은 “모니터링 요원들이 조사한 시장 가격을 구 홈페이지에 올려 소비자가 비교를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상인들의 자율 경쟁을 유도한다는 것.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점포의 상품 가격이 한꺼번에 오를 때에는 한계가 있다.

광진구는 쌀, 세제, 라면, 식용유 등 생필품 21개 품목과 관내 주유소의 휘발유,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등을 구청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 상품 차별화로 가격 비교 어려워

물가모니터링 요원들은 가격을 일괄적으로 비교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같은 ‘일반미 상품 20kg’이라 하더라도 이천쌀이냐 여주쌀이냐에 따라 값이 다르다. 발아 무농약 현미, 발아 유기농 현미 같은 식으로 더 세분될 수도 있고, 할인마트에서는 시간대나 요일에 따라 전략적으로 값을 조정하기도 한다.

지난달 28일에 조사한 수입쇠고기 등심 상품 600g의 값은 대형마트 한 곳에서는 3만2700원, 재래시장 한 곳에서는 6500원일 정도로 가격 차이가 났다. 이 경우 평균 가격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행정당국이 목표 가격을 정해놓고 값을 낮추라고 압박한다면 업체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아 값을 맞출 수도 있다.

상인들은 “시와 구, 소비자단체에서 제각기 물가 조사를 나오는데 그러지 말고 한 번에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가 조사 덜하고 그 시간에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연구해 줬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자체 물가모니터링 활동과 관계없이 지방통계청 직원들이 미리 정해놓은 조사 대상처를 상대로 비공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통계청 허진호 물가통계과장은 “통계청 통계는 객관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물가관리에 대한 권고나 협조 요청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