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상준]서해교전 유족 “올해는 6월 29일이 기다려져요”

  • 입력 2008년 3월 31일 03시 00분


휴일인 29일 밤.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북 의성의 서영석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뉴스를 보고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군과의 교전으로 목숨을 잃은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였다.

“제대하면 제가 잘 모실 테니 농사일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시라고 위로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듬직한 큰아들이었는데….”

하늘나라로 간 장남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슬픔이 배어났다.

“후원이가 세상을 떠난 뒤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는 그는 “뉴스를 보고 떨리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2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서해교전 추모식 행사를 최초로 정부 주관으로 거행해 ‘국민과 함께 영원히 기억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모행사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도록 하고, 방송을 통해 생중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씨는 “오전에 소식을 들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하루 종일 뉴스만 봤다”며 “추모식에 높으신 분들 제발 한 번만 와달라고 부탁하고, 읍소하고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국가의 냉대까지 더해져 지난 5년은 그를 포함한 유가족들에게 고통과 시름의 시간이었다.

매주 병원을 찾아 정신 치료를 받는 유가족도 있었고, ‘이 나라에 기대할 것이 없다’며 이민을 가기도 했다.

서해교전 추모행사는 지난해까지 해군 2함대사령부 주관으로 진행됐다. 정부의 의도적인 무관심에 아들을 나라에 바친 유가족들은 조용히 모여 눈물만 훔쳐야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국민과 함께 추모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죄인인 양 숨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유가족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설레고 있었다.

서 씨는 “이게 다 아이들을 잊지 않고 신경 써주신 국민 덕분”이라며 “비로소 아이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짧은 통화 내내 몇 차례 되풀이했다.

통화를 끝마치며 “건강하시라”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건강할 겁니다. 건강해야죠. 어떻게 마련된 행사인데…. 올해는 6월 29일이 너무도 기다려집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만시지탄(晩時之歎)’ 넉 자가 떠올랐다.

한상준 사회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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