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도전받는 議政경험

  • 입력 2008년 3월 30일 23시 05분


고희를 맞은 가수 패티 김은 올해 전국 25개 도시에서 데뷔 50년 기념공연을 할 예정이다. “요즘 내 목소리는 절정, 그야말로 황금기”라는 그의 말은 감동적이다.

해남 보길도에 다녀오는 버스에서 나훈아 콘서트를 봤다. 3년 전 TV 프로그램 재방송이었다.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열창하는 그에게서 가수 생활 42년의 관록을 실감했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대중의 인기와 이미지에 살고 죽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력은 물론 기본이다. 연예계에는 패티 김 같은 적지 않은 원로급 연기자와 가수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관록 있는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건 다른 점이다.

노래나 연기만 잘하면 사생활쯤은 용서되는 연예인과 말 한마디가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정치인이 같을 수야 없다. 3선 의원만 돼도 구악(舊惡)이나 퇴물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의정활동 경험은 존중보다는 비판과 물갈이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20년 이상 의원 활동을 한 5선 이상 현역 의원이 고작 8명이다.

전두환 정권은 정치쇄신을 명분으로 정치인 567명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적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총선 때마다 신진 세력 영입과 개혁공천 명분에 희생된 다선 의원이 많다. 유권자가 선택한 결과라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번 공천에서도 대통령 형님과 줄을 잘 선 일부를 빼면 3선 이상은 ‘정치적 고려장’ 대상이었다.

4년 전 총선 때 당선자 299명 가운데 초선은 비례대표 54명을 포함해 무려 187명(63%)이었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152명 가운데 초선은 71%인 108명이나 됐다. 신참 정치인들이 장악한 17대 국회가 어땠는지는 유권자들이 안다.

의회정치가 발달한 미국의 경우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으로 30년 이상 활동한 전·현직 정치인은 224명이나 된다. 36년 이상 경력의 현역만 9명이다. 4선인 존 케리(65) 상원의원은 아직도 ‘주니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인 1953년 하원의원이 된 로버트 버드(91) 상원의원은 하원 3선과 상원 9선으로 56년째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9명의 대통령이 백악관을 거쳐 갔다. 그는 내년 11월 19일이면 2만774일이란 최장수 의원 기록을 수립한다. 유력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현역 상원의원 8명은 버드가 의회에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조 바이든(66) 상원의원은 1973년부터 36년째 활약 중이다. 2005년 1월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 때 그는 “나는 키신저 국무장관의 국가안보보좌관 시절부터 상원에 있었다”는 말로 콘돌리자 라이스 후보자를 주눅 들게 했다.

선진국에 장수 의원이 많은 것은 현역 프리미엄이 크고 하향식 공천도 없지만 의정 경험과 경륜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국회가 권위 있고 나라의 중심을 잡는 것은 의정 경험이 풍부한 의원이 많은 것과 무관치 않다.

의정 경험자와 정치 신인 중 누가 더 낫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의정활동 경험보다 다른 경험과 능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비리 문제가 있거나 능력도 없이 지역주의 덕분에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선수(選數)를 쌓은 다선 의원에 대한 심판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험이 도태의 이유가 돼선 안 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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