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묵]‘버핏 따라하기’ 꿈과 현실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세계 언론과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다. 워런 버핏이다. 탁월한 투자 안목으로 그에게는 ‘오마하의 현인(the Sage of Omaha)’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세계의 투자자들은 이제나저제나 그의 입에서 이제는 주식을 살 때라는 말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사실 버핏의 투자 실적은 경이적이다. 버핏은 1965년에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경영난에 처해 있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버핏은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지주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버핏이 인수한 후 지난해까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연평균 2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배당금 2%를 포함하여 연평균 10.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의 투자수익률이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실적도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나 복리의 위력을 감안하면 21.1%와 10.3% 간의 차이는 엄청나다. 1965년에 버크셔 해서웨이에 투자한 1달러는 2007년에 4010달러로 가치가 늘어난 반면에, S&P500에 포함된 기업에 나누어 투자한 1달러는 69달러로 가치가 증가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보면 10.3%의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지난 20세기 100년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배당금을 포함해 연평균 7% 정도 상승하는 데 머물렀다.

굴뚝산업에만 안전투자 해서야

버핏이 이렇게 남다른 투자 실적을 기록한 배경은 철저한 가치투자에 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을 영위하면서, 경쟁 기업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을 방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자(enduring moat)’를 가진 기업에, 적정한 수준이라고 확신이 드는 가격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고 스스로 말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버핏이 투자한 기업의 면면을 보면 의외다. 일반인이 이름을 들어본 기업은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포스코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기업에는 지분 투자만 했을 뿐이다.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 중에서 일반인에게 친숙한 기업은 없다. 업종도 보험, 우유, 초콜릿, 가구, 주방용품, 보석, 전력, 항공운수, 주택 건설 등 이른바 굴뚝산업에 집중돼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투자했음 직한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절제된 고집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모든 투자자가 버핏을 따라할 수 있을까. 버핏을 따라하면 모든 투자자가 버핏처럼 높은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을까. 버핏을 따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주가가 치솟는 기업을 외면하고 뿌연 연기를 내뿜는 굴뚝산업에 집중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설사 모든 투자자가 용케 ‘버핏 따라하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버핏처럼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버핏이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실제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버핏을 따라한다면 저평가된 주식이 있을 수 없고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도 존재할 수 없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버핏을 따라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첨단산업에서는 버핏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해자’가 존재할 수 없다.

첨단산업 외면하면 발전없어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빛나다가도 더 혁신적인 경쟁자의 등장으로 사그라지는 기업이 흔하다. 그러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이런 기업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면 인류의 발전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버핏은 빌 게이츠를 밀어내고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2007년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버핏에게 투자했던 사람들도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매년 미국의 중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카드게임을 즐기는 노인들로 북적거리는 잔치다.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없는 소수만의 행운일지라도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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