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교체가 이재오·이방호 씨를 위한 것이었나

  • 입력 2008년 3월 16일 23시 31분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 여진(餘震)이 심상치 않다. 텃밭인 영남권만 보면 박희태 김무성 의원 같은 중진들까지 탈락해 현역의원 교체율이 43.5%나 됐다. 어제 서울 강남 지역 공천에서는 5선의 김덕룡, 3선의 맹형규 의원도 물갈이 대상이 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두 사람은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과감한 교체다.

그러나 전체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에게 유리하게 조정된 공천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공감을 얻고 있다. 두 이 씨의 ‘당권 장악’ 또는 ‘인맥 만들기’ 의도가 짙게 깔린 공천이라는 것이다. 친(親)이명박 측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한 김무성 전 최고위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잘못된 공천’ 사례들을 보면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중립적이라는 남경필 의원도 어제 기자들에게 “교체된 분들은 나간 분들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데 몇몇 분의 경우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채우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당 지도부나 공천심사위원회는 이제라도 몸을 낮춰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낸 경우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무슨 대학살이냐. 개혁 공천이지”라고 했지만 ‘개혁성’과 특정인들의 ‘의도’가 섞여 있음을 아는 사람, 겪은 사람이 많다. 이 사무총장은 “몇 사람이 떨어져 나간다고 당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언젠가 말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국민이 대선에서 531만 표 차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은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선진화를 이뤄 낼 개혁적 보수정권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민의(民意)에 부응하려면 여당부터 ‘독선이 통하는 장’이 돼선 안 된다. 그런데도 특정인들이 공천 물갈이를 빙자해 정당 민주주의를 왜곡한다면 대선 민의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없겠는가.

이면에는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을 명실상부한 ‘이명박 당’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보는 관측이 많다. 이를 배경 삼아 두 이 씨가 전횡을 한 것이라면 4·9총선에서도 민심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따라줄지 의문이다. 유권자들은 특정인에게 정권교체의 전리품(戰利品)을 헌납하기 위해 대선 투표장으로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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