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심양장계-심양에서온 편지

  • 입력 2008년 3월 15일 02시 49분


조선 후기 연행사 일행의 중국 방문 모습을 그린 ‘연행도’ 일부. 그림 속 행렬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 일행의 하루하루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연행록 전집’(동국대출판부)에 수록된 그림으로 작자는 미상. 사진 제공 동국대출판부
조선 후기 연행사 일행의 중국 방문 모습을 그린 ‘연행도’ 일부. 그림 속 행렬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 일행의 하루하루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연행록 전집’(동국대출판부)에 수록된 그림으로 작자는 미상. 사진 제공 동국대출판부
◇심양장계-심양에서온 편지/소현세자 시강원 지음·정하영 외 옮김/1046쪽·5만 원·창비

1636년 12월(음력)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중국 청나라에 항복했다. 그 패배의 대가는 혹독했다. 청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 고관의 자제들을 볼모로 보낼 것, 해마다 폐백을 바칠 것, 명나라와 단교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소현세자 볼모였다.

이듬해 2월 6일 소현세자 일행은 조국과 백성을 뒤로 하고 청나라를 향해 떠났고 4월 10일 심양(瀋陽·선양)에 도착했다. 그곳에서의 볼모 생활은 1645년 2월 18일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8년이나 계속됐다. 그 긴 세월, 소현세자 일행의 볼모 생활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있다. ‘심양장계(瀋陽狀啓)’. 장계란 지방에 파견 나간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일종의 보고서를 뜻하니,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 일행이 본국에 올린 보고서라는 말이다.

심양에서 세자를 모셨던 시강원(侍講院·왕세자 교육 담당 기관)의 신하들이 한양의 조선 정부 승정원(지금의 대통령실)에 보냈던 많은 보고서를 모은 것이다. 당시 조선과 청의 외교관계 실상 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여기 수록된 장계는 1637년 2월부터 1643년 12월에 이르는 7년치. 소현세자의 볼모 생활 마지막 해에 해당하는 1644년의 장계는 누락됐다. 외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내용 때문에 한양으로 보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폐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이 책은 한문으로 된 ‘심양장계’를 알기 쉬운 한글로 풀어 놓은 것이다. 정하영 교수 등 이화여대 연구팀 6명이 번역을 맡아 서남동양학 총서로 발간됐다. 전에도 ‘심양장계’가 변역된 적이 있지만 이 책은 일반인들을 위해 쉽고 편안한 문체로 다듬는 데 각별히 역점을 두었다.

‘왕세자께서는 8일에 고양군 별당에서 묵으시고, 9일에는 파주를 10리쯤 지난 이천에서 묵으셨습니다…이번에 포로가 된 남녀들이 산과 들에 이어가고 있고, 가는 길이 쉽지 않아 하루에 30, 40리밖에 갈 수가 없습니다…앞으로의 사정은 그때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심양장계’엔 패전국의 세자로서 청의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는 소현세자의 하루하루, 최명길을 직접 심문하라는 청의 요구를 소현세자가 거부하는 장면, 청과의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윤집 오달제의 처형 소식을 알리는 대목, 청으로 끌려온 조선 포로들의 험난한 생활, 김상헌이 쇠사슬에 목을 묶인 채 심문을 당하는 모습 등이 묘사돼 있다.

이 장계를 읽다 보면 패전국의 처연했던 역사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점, 이것이 ‘심양장계’의 진정한 의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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