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은 힘들어도 여러분 봉급은 나간다”

  • 입력 2008년 3월 10일 23시 48분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민이 힘들어도 여러분에게는 봉급이 나간다”면서 “국민이 아파하는 걸 더 아파하는 심정으로 일해 달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경제가 어려워도 감원되거나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없지 않으냐”면서 “언제나 ‘부도가 나면 어쩌나’ ‘회사가 파산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월말이면 직원들 봉급을 마련하느라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나 중소 자영업자들은 대통령의 말에 누구보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생산 활동의 주역인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북돋우기는커녕 규제를 무기삼아 이를 억눌러온 게 사실이다. 대통령의 말은 이런 관료사회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됐다고는 하지만 공무원사회의 관치(官治) 체질이 바뀌었다는 징후는 찾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부터 유능한 조직으로 바꾸겠다”며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이루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기업 민영화만 해도 정부 일각에서 ‘경영과 소유의 분리’라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해 민영화 의지의 퇴색을 우려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근무시간을 앞당기고 주말에도 현장을 방문하자 일부 부처에서는 평일에도 할 수 있는 회의를 주말로 미룬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복지부동(伏地不動)과 무사안일(無事安逸)로도 모자라 이제는 겉치레 형식주의까지 추가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직업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이유는 공복(公僕)으로서 능동적으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요령을 피우라는 게 아니다.

이 대통령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공무원들의 ‘군기’를 잡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만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진정 작은 정부, 국민을 섬기는 정부, 시장을 살리는 정부를 구현할 생각이라면 스스로 공무원에게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될 각오를 하고 직접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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