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성호]투병 속 위안부할머니들 “日사과 꼭 받을 것”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여기에만 있으려니 답답해. 빨리 (나눔의 집으로) 가야 하는데….”

3·1절을 사흘 앞둔 27일 오후 경기 양평군 용문면 효병원 604호 병실. 문필기(83) 할머니가 나눔의 집에서 병문안 온 이옥선(80) 할머니에게 하소연했다.

문 할머니는 폐기능 약화로 코에 연결된 튜브로 산소를 공급받고 있다. 치료를 받은 지 1년이 넘었지만 나이 탓인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 병실에는 김군자(82) 할머니가 입원 중이다. 지난해 추석 비탈길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5개월째 고생하고 있다. 수술 뒤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언제 퇴원할지 모른다.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 8명은 이렇게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최고령자인 박옥련(88)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나머지 할머니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다. 2월 6일에는 지돌이 할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85세를 끝으로 숨을 거뒀다. 1995년 나눔의 집 설립 이후 15명이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8명으로 줄었다.

워낙 고령이어서 이제는 ‘감기만 걸려도 가슴이 철렁한다’고 나눔의 집 관계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한 형편이다.

나눔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생활관 2개를 허물고 4월에 2층짜리 전문요양병원을 짓는다.

원래는 생활관을 그대로 두고 옆에 병원을 세울 계획이었다. 팔당상수원수질보전지역이라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사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근처 노인복지시설로 ‘더부살이’를 가야 한다.

할머니들의 건강을 관리해 온 퇴촌중앙의원 경명현(47) 원장은 “할머니들이 정신적으로 민감해서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뀔 경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은 규정에 묶여 이렇다 할 해결책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할머니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기에 일제의 만행에 대해 꼭 성의 있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하다.

이옥선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을 때까지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며 “그때까지는 절대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성호 사회부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