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득갑]한국과 프랑스의 실용 경쟁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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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간 한국호를 이끌 신정부의 국가 운영 청사진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신정부는 ‘전봇대’로 상징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경쟁과 개방을 통해 경제 성장과 고용을 달성하는 국가 전략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2만 달러인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을 5년 후에 4만 달러까지 끌어올리고 경제 규모도 적어도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키는 목표를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佛316개 개혁과제 추진

국가 간 무한 경쟁의 시대에 ‘성장과 고용’은 각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다. 세계 6위의 경제대국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아탈리위원회’로 불리는 ‘프랑스성장촉진위원회’는 약 4개월간의 작업 끝에 23일 국가 개혁 방안을 집대성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개혁안은 우리도 참고할 만한 많은 정책을 담고 있다. ‘프랑스를 변화시킬 300가지 제안’이란 제목의 245쪽짜리 보고서는 현재 저성장과 고실업의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치료하기 위해 규제 완화와 시장경제의 강화를 주문했다.

개혁안에는 분배와 평등을 강조해 온 프랑스의 사회 근간을 흔드는 20여 가지 파격적 제안을 포함해 총 316개 제안이 들어 있다. 65세 정년 철폐, 약국과 택시 등 허가제 업종의 전면 자유화, 백화점 레스토랑 영화관 등의 완전 가격 자유화를 제안했다. 그리고 거래세를 낮춰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고 영업시간 규제도 폐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대학 순위 평가, 초등학교 영어교육 확충, 교사 능력평가제 도입 등을 제안하고 있다. 2009년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만큼 공공지출을 줄일 것도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해고 자유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한편 고용 촉진을 위해 사용자가 부담하는 사회보장기여금을 줄이는 감세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자크 아탈리 위원장은 개혁이 제대로 시행되면 2012년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높아지고 15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 실업률이 현재의 8.6%에서 5.0%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개혁안 중 많은 부분을 정책으로 채택해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1960년대 이래 프랑스 최대의 경제 개혁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아탈리위원회의 개혁안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선, 경제 살리기에는 좌우가 따로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탈리 위원장은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좌파 지식인이다. 좌파 석학이면서도 우파 정권의 개혁 청사진을 만드는 데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경제살리기엔 좌우 따로없어

둘째, 위원회는 각국의 덕망 있는 전문가 43명으로 구성됐다. 한때 사르코지와 대립각을 세웠던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경쟁정책담당집행위원은 물론이고 네슬레, 볼보 등 유럽 대기업의 회장을 위촉해 다양한 시각에서 개혁안을 도출했다. 셋째, 위원회는 4개월이라는 비교적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개혁안을 마련했다. 넷째, 위원회는 2012년까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 오랜 사회주의 체제 탓에 개혁이 쉽지 않아 위원회가 목표를 낮게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한국과 프랑스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성장잠재력 확대를 위해 대대적인 개혁의 출발선에 서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처럼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앞으로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과 프랑스가 4, 5년 뒤에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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