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YS 가문, DJ 가문

  • 입력 2008년 1월 13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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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김영삼(YS) 전 대통령 같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전만 해도 병중(病中)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향해 “나쁜 사람”이라고 독한 말을 퍼붓던, 정말 못 말리는 YS였다. 자기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백담사 유배’를 주장하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만큼은 반대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더라며 혀를 찼던 YS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산수(傘壽·팔순) 축하연에서는 달랐다. 김 전 대통령은 “어떻게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든 살이 됐다. 감히 고백하거니와 한 인간으로서 결코 비겁하게 살지 않았고, 한번도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조국과 국민이여, 자유민주주의와 더불어 세계 속에서 번성하고 영원하라. 이것이 제가 조국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獻辭)요, 마지막 소망”이라고 할 때는 하객들 사이에 비장함마저 흘렀다. 어찌 보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정치’라는 YS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계은퇴 선언처럼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말씀이 떠올라 순간 울컥했다.

단재는 그의 대표작인 ‘조선상고사’를 탈고한 뒤 “많은 희망과 큰 슬픔을 아울러 하여 너를 이 세상에 보내노라. 원하노니, 장수(長壽)하라. 큰소리치라. 유수(流水) 같을 지어다”라고 했다. 세상에 조선상고사를 내보내는 단재의 심회(心懷)와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바라보는 YS의 감회(感懷)가 묘하게 겹쳐졌다. 아마 10년만의 정권 재탈환이 없었더라면 YS의 팔순 인사말 내용도 달라졌을 것이다.

여하튼 축하연은 마치 전성기 때의 ‘김영삼 가문(家門)’을 보는 듯 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이날처럼 옛 민자당과 신한국당, 그리고 지금의 한나라당 인사들이 총출동한 자리는 없었다.

모두가 총출동했는데, 한 때 김영삼 가문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전 경기지사였다. 1993년 그의 정계입문 구호는 ‘대통령(YS)이 불러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당시 9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던 문민정부 김영삼 가문의 촉망받는 새내기였고, 모두가 ‘오냐오냐’하며 떠받들던 대군(大君)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반(反)한나라당 진영에서 대선을 치렀다고 YS의 팔순 축하연까지 참석치 않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김대중(DJ) 가문’의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초대장을 받았는데도 갈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역설(逆說)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후보는 내줄 수 있어도 집안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게 김대중 가문의 뿌리 깊은 의식이다. 과거 이기택 당대표 시절이 있었지만, 이 대표는 적어도 김영삼 가문의 사람은 아니었다.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도 뭐랄까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안 된다’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다. 손 대표를 받아들인다는 건 DJ 가문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정치를 해온 DJ 직계들도 마치 정치초년병들처럼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DJ는 연초 “정치인생 반세기 동안 이렇게 처참하게 진 건 처음”이라며 “금년에는 잘하라”고 했다. 그 말을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과연 누구보고 잘하라는 뜻이 될까.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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