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창우]이제라도 정책으로 대결하라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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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의 뇌관이던 BBK 사건은 ‘헛방’으로 끝나고 말았다. 5일 검찰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4대 의혹을 모두 혐의 없다고 결론 내고 29일 만에 수사를 종결지었다.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 코리아 주가조작 공모에 관여한 증거가 없고, BBK 주식을 이 후보가 소유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며, 이 후보가 다스 의사결정에 개입하거나 이익금을 받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례 없이 신속하고도 과학적인 수사를 했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며 특검으로 가야 한다는 범여권과 그동안 허위사실을 유포한 범여권 관련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것이라는 야당은 더욱 날을 세우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발표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결론 난 것으로 보는 것은 정치권의 착각일 뿐이다. 많은 유권자는 처음부터 BBK 사건의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표를 결정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면계약서’ 몇 장에 이 나라 대통령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지지 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 이 점을 말해 준다.

범여권 후보나 야당 후보나 BBK 사건이 마치 청와대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는 것처럼 여기에 다걸기(올인)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이다. 이번 대선은 도덕성에 매달려 대통령을 선택했던 2002년 대선과는 다르다. 그때는 병역비리의 진실 여부가 선거 쟁점이 됐지만, 선거 후 병역비리가 허위라고 밝혀지자 국민은 기만당했음을 알았다. 또 도덕성이 이 나라의 어려운 경제, 외교, 국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5년 내내 절감했다. 그래서 야당 후보의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돼도 야당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가지 않자 답답한 범여권 정치인이 이 나라를 ‘국민이 노망든 이상한 나라’라고 비하해도 국민은 화내지 않는다.

올해도 세계 경제는 뛰는데 한국 경제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내년의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떨어지고, 경상수지도 1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체감물가는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으니 국민의 생활은 어렵다.

이런 때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먹혀들지 않는다. 상대후보를 겨냥한 비리 들춰내기는 정치 문제다. 정치 문제는 법적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불신해 BBK 사건을 특검에 맡기려는 것이나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벌이는 것은 네거티브 선거의 연장이다.

이제 대선을 열흘가량 남겨 두고 있는데도 정책대결은 실종돼 유권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대통령을 뽑아야 할지 난감하다. 대통령 후보들은 이제라도 정책으로 대결을 벌여야 한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 색깔에 맞는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후보들이 저마다 경제를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은 후보들이 어떤 구체적 실천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더디게 하고 국민 생활에 간섭만 늘리며 예산을 낭비하는 비대한 정부를 슬림화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 민주주의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언론통제 정책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차별하는 사법 양극화는 차기 정부가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렇지만 어느 후보도 사법 양극화 해소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은 문화 강국이다. 정보화 시대가 될수록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각 후보는 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교육은 지금 하향 평준화 정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한 교육정책은 무엇인가.

유권자는 상대방 정책의 허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자기 정책의 강점을 드러내 신뢰를 주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한국 정치의 후진적 모습인 네거티브 선거를 버리고 정책 대결에 모든 것을 걸자. 대통령 후보들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국민을 잘살게 하는 정책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 표를 찍게 하라.

하창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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