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테러와의 전쟁, 파키스탄發위기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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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내 정세는 진정되는 것 같다. 바그다드에서 테러가 줄었고 시리아로 대피한 난민의 귀국도 시작됐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탈레반이 급속히 세력을 회복해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탈레반의 자살폭탄테러로 일반인 200명이 숨졌다.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내전 직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스위스가 철군 선언을 했다고는 하지만 독일도, 영국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 주둔할 의사를 밝혔다. 총선으로 정권이 바뀐 오스트리아에서도 철군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이 급속히 세력을 회복하고 알 카에다마저 활동을 재개하는 상황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치 이라크의 치안과 반비례하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왜일까. 아프가니스탄 개입 시 군벌의 힘에 너무 의존했다거나 국제치안지원군(ISAF)이 광범위한 치안유지 활동을 준비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파키스탄의 정세가 미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파키스탄이야말로 아프가니스탄 작전의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이다.

탈레반 정권은 파키스탄 군부의 지원에 의해 성립된 외인(外人)부대라는 성격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를 떠안고 있던 파키스탄 군부는 아프가니스탄 정세 악화를 걱정해 탈레반의 뒤를 봐줬다.

당시 정권 담당자는 이번에 귀국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지만 군부를 좌지우지한 이는 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샤리프 전 총리가 외유 중일 때 정권을 장악한 뒤 그의 귀국을 저지함으로써 사실상 쿠데타에 성공했다.

정적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에 대한 박해 등을 감안할 때 샤리프 전 총리를 민주주의의 기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선거가 아닌 실력으로 정적을 국외로 추방한 무샤라프 대통령도 민주주의와는 인연이 멀다. 그 무샤라프 대통령이 9·11테러 후 미국의 맹우(盟友)가 됐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도에 대항하기 위해 파키스탄은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대미관계의 재구축을 위해 무샤라프 대통령이 워싱턴의 요청을 따르는 것은 절대명제였다. 그러나 워싱턴은 무샤라프 대통령과 파키스탄 군부가 뒤를 봐주는 탈레반 정권 타도를 요구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무샤라프 대통령의 협력은 면종복배(面從腹背)였던 것이다.

탈레반 정권 해체 후 다국적군은 파키스탄 국경 근처에 숨은 알 카에다 토벌작전을 벌였지만 파키스탄 국경 안에서는 작전을 펼 수 없었다. 알 카에다로서는 파키스탄으로 도망가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오사마 빈 라덴도 놓쳐 버렸다.

그럼에도 워싱턴은 무샤라프 정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지 못했다. 파키스탄 군부에까지 이슬람 세력이 확산되고 있어 무샤라프 대통령이 퇴진하면 파키스탄 정치 전체가 급진이슬람으로 기울 위험이 있었다.

지금 무샤라프 정권은 붕괴 직전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정권 기반은 국내의 반미 감정이나 이슬람 세력의 확대에 따라 약해져 왔다. 강권적인 선거에 의해 대통령 지위를 유지해 왔지만 국외로 추방된 정적 2명이 돌아와 내년 총선을 겨냥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무샤라프 정권의 위기는 아프가니스탄의 위기,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국외에서 무샤라프 정권을 떠받쳐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국내의 반발만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테러와의 전쟁을 지탱하는 구조가 여기서도 허물어지려 하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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