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맥킨지 컨설팅 롤랜드 빌링어 서울사무소 대표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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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빌링어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국내 언론과는 처음으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국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글로벌화로 덩치를 키워 중국과 인도 기업의 거센 추격을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구  기자
롤랜드 빌링어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국내 언론과는 처음으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국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글로벌화로 덩치를 키워 중국과 인도 기업의 거센 추격을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구 기자
“한국 기업은 인수합병(M&A)을 통한 글로벌화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글로벌화 없이는 성장이 힘들고, 성장 없이는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버텨 낼 수가 없습니다. 경제 모델과 관련해서 앞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모법답안’으로 삼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올해 7월 맥킨지 컨설팅의 서울사무소에 부임한 롤랜드 빌링어 대표. 그는 부임 후 한국 언론과는 처음으로 가진 8일 본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글로벌화(globalization)’란 단어를 화두로 꺼내 놓았다.

1991년 맥킨지에 입사한 그는 2003년부터 한국 부임 이전까지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업운영 컨설팅 리더로 근무했다. 이 당시 그는 기업을 대상으로 시장 진입과 M&A 등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으며, ‘ASEAN 경쟁력 연구’ 등 정부 대상의 컨설팅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사실 글로벌화란 것은 이미 우리나라 기업들이 여러 해 동안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말이다. 그런데 그는 왜 새삼스럽게 글로벌화를 얘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빌링어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아직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재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해외 소비자와 인재를 끌어들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기업도 부족합니다. 한국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들에게 멋있다(cool)는 느낌을 주는 경우 역시 아직까지 많지 않습니다.”

○중국-인도와 경쟁하려면 M&A 필요

그는 ‘위기와 기회’란 상반된 관점에서 글로벌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시장 규모와 성장성 면에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젠 저비용 국가도 아닙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 공정의 일부를 임금이 싼 지역으로 옮겨야 합니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글로벌화가 필요합니다. 에너지 회사의 경우 자원 개발을 통해 위기를 방지할 수 있겠지요.

글로벌화는 기업에 많은 기회를 가져올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에는 해외의 우수 인재들이 앞 다퉈 지원합니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빨리 포착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과 인도 등에서 10억 명의 신(新)중산층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들을 붙잡을 글로벌 트렌드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화를 추진할 방안으로 국제적인 M&A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의 상황에서는 M&A 이외의 방법으로 글로벌화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은 기존 사업과 조직을 확대 발전시키는 ‘유기적 성장’을 성공적으로 해 왔습니다. 이는 정교하고 세련된 운영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는 제조부문에서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 업무에서도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포스코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도요타만큼 훌륭한 운영 시스템이 없습니다.

따라서 M&A처럼 비유기적인 방법으로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게다가 M&A는 피인수 업체의 자산과 우수 인력 등 경쟁에 필요한 ‘실탄(ammunition)’을 공급해 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두산의 M&A 사례는 이런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빌링어 대표는 덩치가 크고 속도가 빠른 중국과 인도 기업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M&A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도의 타타스틸이나 중국의 레노보는 M&A로 규모를 키워 세계시장의 강자로 등장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유기적 성장만으로 이들과 대적할 수 있을까요?”

○한국 ‘이중 경제구조’가 문제

그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에 대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크게 차이 나는 ‘이중 경제구조(dual economy)’ 때문”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 차이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2003년 기준으로 제조업의 65%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런 서비스업이 고용의 70%를 담당하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빌링어 대표는 앞으로는 일본을 ‘모범답안’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및 공공분야 관계자들과 만나 보면 일본식 모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하지만 일본을 따라가느니 차라리 중국이나 인도를 모델로 삼는 편이 낫습니다. 1980년대까지라면 정부 주도의 일본 모델이 최고였지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일본도 이중 경제구조란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그는 서비스업을 글로벌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보호가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캐나다와 호주를 보세요. 두 나라에선 금융업 개방 후 자국 은행들의 경쟁력과 혁신이 오히려 대폭 강화됐습니다. 문호를 개방했다고 해서 외국 기업들이 시장을 다 차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외국계 금융사들의 비중은 여전히 작습니다. 특히 자국 기업 선호도가 높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소비자들이 외국 기업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한편 그는 “개인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외국에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며 “한국 기업들의 성장이 이런 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겠지만, 이제는 국가가 기업들의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롤랜드 빌리어 대표
△독일 출생 △독일 뮌헨대 경영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사 및 박사 △독일에서 맥킨지 입사(1991년) △맥킨지 아시아태평양 기업운영 컨설팅 리더(2003년∼2007년 6월)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2007년 7월)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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