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뮤지컬 전쟁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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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문화 분야를 꼽는다면 단연 뮤지컬이다. 올해 뮤지컬 매출액은 1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00억 원에서 25% 성장한 것이다. 2003년 매출액이 600억 원 정도였으니 4년 사이에 두 배 이상 훌쩍 커버린 것이다. 관객 수도 올해 15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화 수요가 부쩍 늘어난 가운데 그중에서도 고급 취향의 뮤지컬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9일 공연예술 관계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참석했던 한 인사는 “그동안 아무리 정부에 지원을 호소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뮤지컬이 산업으로서 가능성을 보이자 이제야 정부가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공연예술인들은 기초예술 지원과 세금 감면을 요구했다.

▷뮤지컬 관람은 사회적 신드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연말이면 서울의 주요 공연장은 뮤지컬이 점령하다시피 한다. 인기 뮤지컬은 10만 원이 넘는 비싼 값에도 표를 구하지 못해 ‘전쟁’이 벌어진다. 송년회를 뮤지컬 관람으로 대체하는 모임도 있다. 올 연말 역시 극장에 오르는 뮤지컬은 외국 작품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 작품을 국내에서 공연하면 매출액의 15%, 많게는 20%까지 로열티를 지불한다. 국내 극단 간의 과잉 경쟁으로 로열티 지출이 더 늘어났다. 뮤지컬을 문화산업으로 치켜세우지만 아직은 별로 손에 쥐는 것 없는 ‘속 빈 강정’이다.

▷외국 제작자들에게 한국은 마음씨 착한 고객일 뿐인가. 매력이 감소한 영화를 떠나 뮤지컬로 선회한 국내 투자자들은 이익 내기에만 골몰하느라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소홀하다. 뮤지컬 시장은 앞으로 더욱 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한국인 기호에 딱 맞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은 초유의 풍요로움 속에서 외국의 소비시장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번듯한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문화산업의 첨병이 될 것인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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