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실장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상 개시로, 송 장관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상의 종료로 본 것이다. 외교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두 고위 당국자의 생각이 이처럼 다르니 혼란스럽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종전선언의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은 마당에 무슨 평화협상을 하고, 관련국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하다.
백 실장의 의도는 짐작이 된다. 될수록 빠른 시일 안에 관련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여 종전과 평화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그런 생각일 것이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다”고 한 대통령이니 자신의 임기 중에 획기적 성과를 만들고도 싶을 터이다.
그러나 송 장관의 말대로 종전선언이 가능하려면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져야 하고,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6자회담이 잘 진행되고 있지만 핵 폐기까지는 아득하다. 그것이 진짜 가능할지조차 의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비핵화 후반기 또는 그 후에나 종전선언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종전선언을 입에 담을 여건도 안 됐거니와 우리가 추진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다.
노 대통령은 10·4 정상선언에 명기된 3자, 4자의 뜻도 잘 모른 채 서명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종전선언을 한다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외친다고 평화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임기 말 정권이 남북문제의 성과에 집착하면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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