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검사다운’ 검찰을 기대하며

  • 입력 2007년 10월 18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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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후 유력한 고교 동문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각계에 진출한 부산고 동문들이 그의 국정원장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임채진 법무연수원장도 김 원장의 고교 후배로 모임에 초대받았다. 하지만 임 원장은 이 모임에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검찰 주변에선 “임 내정자는 김 원장의 고교 후배이지만 법적으로 수사 관련 사항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을 지휘하는 자리라는 점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평소 정치권과 거리를 두어 온 임채진 내정자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주변에선 임 내정자와 관련된 이런 얘기들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다음 달 국회 인사청문회를 남겨두고 있지만 곧 출범할 ‘임채진호(號)’의 항로를 점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임채진호’의 항로가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당장 대선 관련 수사가 첫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각 후보 진영은 임 내정자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검찰을 압박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임 내정자는 올 3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검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가 이 시대 검찰의 화두(話頭)”라고 강조했다. 그가 역설한 대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는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불과 4개월 뒤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정권 이행기도 임 내정자가 넘어야 할 산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총장 인선을 앞두고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차기 정부에 총장 임명권을 넘겨야 한다”고 반발했었다.

임 내정자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법에 정해진 대로 2년 임기를 채워 임기제 총장의 맥을 이을 수 있을지 법조계 주변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런 난기류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 정부 출범 초인 2003년 3월 취임한 지 3개월 된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을 사실상 경질한 전례도 있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17일 서울대 특강에서 “(내년에) 법무부 장관은 정치인 출신이 올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를 대비해서 보더라도 검찰은 더 독립적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하다.

정 장관의 발언처럼 임 내정자는 업무 추진 동력을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역설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란 화두를 더욱 세게 부여잡는 길만이 살길이다. 국민이 검찰에 보내는 성원이 든든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2004년 6월 청와대의 대검 중수부 기능 축소 움직임에 맞서 “중수부가 지탄을 받으면 내가 (나의) 목을 치겠다”고 받아쳤다. ‘총장 교체설’이 나돌았지만 그는 끝까지 임기를 마쳤다. 엄정한 대선자금 수사에 쏟아진 국민의 찬사가 그를 버티게 해 준 밑거름이 된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 검찰을 조롱하는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지만 대선자금 수사를 계기로 검찰은 ‘검사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임 내정자도 좌우를 살피거나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 공언한 그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다시 한번 ‘검사다운’ 검찰을 보고 싶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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