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한]평화협정 4자 참여가 순리다

  • 입력 2007년 10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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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주변 4강 중에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의 순서는? 학생들의 답변은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었다. 과연 그럴까? 내 답변은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다.

일본과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북한에 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나라다. 다음으로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도와준답시고 뒤에서 ‘압력’을 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인 ‘가까운 사이에 경멸감이 싹튼다’는 이치다. 러시아 역시 신뢰할 수 없지만 중국보다는 간섭을 덜 하는 편이다.

‘통일 한국’ 주변국 도움 필수

북한이 미국을 가장 덜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도 초강대국에 대한 외경심 때문일 것이다. 이란의 지도자처럼 미국을 영혼으로부터 싫어하는 ‘종교적 적대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없다. 핵무기 두세 개 갖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면 미 ‘제국주의자’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

10·4공동선언 제4항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다. 3자 또는 4자 정상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데 있어서 3자는 중국이 제외된 남북미(南北美)를 가리키고 4자는 남북한과 미중(美中)이라는 얘기다.

6·25전쟁을 조미(朝美)전쟁, 즉 북한과 미국 간의 전쟁이라고 역사책에 기술한 북한으로선 종전선언 논의에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간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북한에 가장 바람직한 구도는 북-미가 평화협정을 맺는 형태다. 그러나 한국이 반발할 테니 형식은 남북미로 하고 실질적으로는 북-미가 담판을 짓자는 것이 북한이 생각하는 3자 종전선언의 실체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잘 지내면 다른 ‘애송이’들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6·25전쟁의 유산으로 형성된 불안정한 정전상태와 군사적 대립구도를 청산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는 일이다. 따라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남북한 군비통제, 평화협정 체결,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6·25전쟁을 법적으로 종식시키는 선언이나 협정의 차원을 넘어 평화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는 구체적 조치가 수반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한반도 분단의 원인은 외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통일은 남북한 간의 ‘민족적 집단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분단의 원인이 외세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 역시 외세 변수를 고려해야만 한다.

서독의 통일정책은 통일 독일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키는 작업이었다.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안심시키고 그를 통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동독 인민과의 통일 의지만 강조하지 않고 외세를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南北이 체결, 美中이 보장해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남북한과 미중이 되는 것이 순리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후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에 이르는 동안 주변 4강 외교를 전략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경제재건 및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중심축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의 도움을 확보해야 한다.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가운데 주변국의 협조를 통해 이룩될 수 있다. 통일한국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 줘야 통일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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