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배고픈 군산, 배부른 울산

  • 입력 2007년 10월 7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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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골 마을이던 전남 영암군 삼호읍은 조선소 덕에 떴다. 이곳에 입주한 현대삼호중공업과 협력업체 임직원의 총급여가 매달 400억 원을 넘는다. 삼호중공업이 전남권 협력업체에 주문을 내는 게 월평균 500억 원 규모다. 이 회사에서 풀리는 돈이 삼호 주변 경제를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목포와 가까운 삼호에선 “DJ보다 삼호중공업이 낫다”고 할 정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향 지역을 발전시킨 것보다 올해 매출 2조6000억 원 목표인 세계 5위 조선업체 삼호중공업의 기여도가 더 높다는 의미다. 삼호중공업과 협력업체 직원은 1999년 3300명에서 최근 1만 명을 넘어섰다. 다른 마을은 이농(離農)으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삼호는 인구가 부쩍 늘어나 2003년에 읍으로 승격했다.

조선업계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의 블록공장(대형선박 제조용 부품들을 중간 단계의 큰 덩어리로 용접 조립하는 공장)을 유치한 전북 군산시도 비슷한 꿈을 꾼다. 공장 공사는 12일 군장국가산업단지에서 시작돼 내년 5월 마칠 예정이다. 총 1조 원 투자계획 중 1단계는 3000억 원으로 이미 생산직 사원 460명을 뽑아 교육하고 있다.

군산에선 ‘현대중공업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협력업체들의 공단 입주 문의가 잇따르고 있고 일대 부동산값도 올랐다. 줄어들기만 하던 인구가 7월부터 증가로 돌아섰다. 9월엔 86명이 늘었다. 내년에는 11년 만의 인구 증가도 가능할 것 같다. 연간 수십억 원의 지방세로 시 살림도 나아질 것이다. 노홍석 전북도 투자유치과장은 “기존의 농업, 자동차, 기계에 조선업을 추가해 지역산업을 다각화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업 모시기’ 한 번에 다양한 효과를 거두는 일석다조(一石多鳥)다.

현대중공업 앞뒤로 두산인프라코어, SLS조선 등이 군산 투자를 확정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생기게 됐다. 군산은 한숨만 쉬던 청년 ‘백수’들이 어엿한 직장에 출근하고 공장 부근에 식당과 유통점포들이 문을 열어 지역경제에 돈이 도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경북 포항, 경남 거제는 물론이고 경기 파주, 충남 아산과 당진도 기업 투자 덕에 순식간에 산업도시가 됐고 세금 수입도 부쩍 늘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은 말만 앞세우는 정치권이 아니라 여전히 기업에 있는 것이다.

기회는 거저 오지 않는다. 군산도 때마침 군장산업단지를 포함해 현대중공업이 원하는 211만 m²(약 63만 평)의 공장 용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LG, LS 계열사가 갖고 있던 공장 용지를 양보하도록 설득하는 등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인 김완주 전북지사 등의 노력이 보태졌다.

숨은 이유 하나는 울산의 태도다. 울산은 흔치 않게 자동차(현대자동차), 조선(현대중공업), 유화(SK 등) 3대 업종이 함께 둥지를 튼 한국의 ‘산업수도’다. 1인당 지역총생산이 4만 달러를 넘어 서울의 2배이고 경쟁력도 1위다. 집값도 부산보다 비싸다. 현대중공업이 사계절 잔디 축구장, 문화시설, 학교 등을 만들어 주니 울산시 예산도 절약된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몰리는 일감에 조선소가 비좁아져 작업조차 어려워졌다. 그래도 중국으로 나가지 않고 인근에 새 공장을 짓고 싶어 했지만 울산은 튕겼다. 이만큼 잘나가다 보니 울산이 배가 부른 것 같다. 배고픈 도시들로서는 좋은 기회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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