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커피프린스 1호점’ 이윤정 PD의 김창완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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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가 고요한 산길을 밟았다. 익숙한 소리가 났고 반가웠다. 6개월이 넘게 손을 놓았던 자전거를 들고 지난 주말 강원 태백 만항재에 올랐다. 바퀴를 굴리자 쭈그러졌던 마음들이 툭툭 튀어나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어우∼ 소리를 지르며 태백산 골짜기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이 품에서 뒹굴다 저 품으로 미끄러지며 신나게 놀았다. 행복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행복을 가르쳐 준 사람이 떠올랐고 그에게 감사했다. 그는 어느 날 불쑥 자전거를 메고 나타나 ‘내 마음속의 별’이 된 사람이다.

김창완. 이분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처음 모셨을 때 주변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거라면서 이분이 얼마나 위대한 음악인인지 설명하기 바빴다. 이분은 지금 연기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실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노래를 만드셔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창완 선생님은 위대한 가수이고 훌륭한 배우다. 그러나 내겐 가수나 배우가 아닌 무서운 자전거 선생님이다.

‘떨리는 가슴’이란 드라마를 마치고 쉬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뵈러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난 입고 나간 청바지 대신 쫙 달라붙는 자전거 팬츠를 입고 어깨엔 자전거를 걸고 있었다. “자전거 타면 좋은가?”라고 촬영 현장에서 흘렸던 말을 들으셨나 보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선생님 주변엔 나처럼 이런 식으로 자전거를 시작한 사람이 꽤 많다. 이장수 PD는 부인과 한강을 산책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선생님과 부딪쳤는데 그 자리에서 손을 잡혀 자전거 가게에 가셨다고 한다.

암튼 이렇게 선생님의 자전거 교육이 시작되었다. “슬슬 굴리면 됩니다.” “초보용 페달은 필요 없어.” “안장은 좀 올려야지요.”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자전거를 산 첫날부터 탈진이 될 때까지 바퀴를 굴려 미사리에 다녀왔고 전문가용 페달에 적응 못해 아스팔트 바닥에 양쪽 무릎을 다 깠으며 높은 안장에 엉덩이가 까질 듯이 얼얼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분당까지. 그리고 그 다다음 날은 자전거는 산을 타야 한다면서 ‘땀 조금 나면 올라가는 곳’이라고 우면산엘 데려가셨다.

우면산 정상까지 땀을 세 바가지 정도 뿜어내고 나니, 한 바퀴 정도는 섭섭하다며 죽을 듯이 올라온 그 길을 가볍게 내려가셨다. 그렇게 우면산을 두 바퀴 올랐다.

이렇게 해서 내가 자전거를 타게 된 지 이제 2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선생님께 배운 자전거 교육은 상당하다. 페달을 굴리는 근육은 작은 근육이 아니라 큰 근육을 쓰는 것이고, 골반을 축으로 해서 무릎은 계란 모양의 타원을 그리고, 손은 그저 핸들에 얹어 놓는 정도로만…. 설명이 계속되다 보면 x축 y축의 기하학 그래프며 삼각함수까지 나온다.

그런데 신기한 건 기하학과 물리학이 가미된 그 어려운 설명이 아주 알아듣기 쉽다는 거다. 초보의 불안한 마음과 성급한 태도가 그 어려운 설명으로 잠재워지고 눈앞에 자전거 타는 모양이 그려진다. 우면산에 처음 간 날 오르막길을 열심히 ‘페달질’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오른팔을 초록의 숲으로 쫙 펼치며 외치셨다. “보세요, 이게 다 내 것입니다. 부자예요. 으하하하∼.”

순간 땅바닥만 힘주어 노려보던 두 눈을 들어 선생님의 오른손 끝을 보았다. 온통 초록이었고 풀냄새가 물씬했다. 여름의 절정이었다. 온몸이 차올랐고 정말 부자가 된 듯했다.

나는 의미중독자이다.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이 무능해지는 것 같고 그럴싸한 의미를 찾아내면 똑똑해지는 것 같다.

이런 내게 선생님이 자전거를 가르치는 방식은 충격이었다. 자전거를 덜컥 사게 하시는 걸 보고는 ‘맞아, 중요한 결정은 작은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라고 생각했고 완급 조절 없이 몸이 먼저 자전거에 적응하게 만드시는 걸 보고는 ‘맞아, 마음이 몸보다 더 게으르니까 몸부터 움직이고 봐야 해’라고 생각했다. 부지런히 선생님의 방식에 의미를 달며 좇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게 다 내 것입니다∼” 외치시는 그 순간, 땅바닥에 박혀 있던 두 눈을 들어 오른손 끝 쪽의 초록을 보는 그 순간, 마음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의미중독이 풀리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동안 의미 찾다 망쳐 버린 연애며, 의미에 눌려 좋은 줄 모르고 했던 일이며, 의미를 따지다 괜히 몰아붙였던 친구들이 술술 생각났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렸을 땐 내가 누구인지, 세상과는 어떤 관계인지 많이 이해하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감동’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자신의 집에서 방송국까지 출퇴근하는 길에 대해 여쭤 보면 집 앞 모퉁이의 끝이 조금 깨진 보도블록과 슈퍼마켓 앞 전봇대에 가끔 나타나는 도둑고양이와 큰길로 나가기 전의 노란 칠이 얇아진 횡단보도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기억력은 탁월하다. 어린아이가 개미를 관찰하듯 선생님은 세상을 담아 두신다. 맨마음, 맨눈으로 주변을 기억하신다. 감동적인 관찰을 하신다.

자전거를 처음 탈 무렵 “자전거 타면서 좋은 경치 보시면 마음이 참 좋아지시겠어요?”라고 질문하자 선생님은 “아이고, 바퀴를 굴려 보세요. 경치고 뭐고 땅바닥하고 씨름하기 바빠요. 좋은 경치 감상하고 그럴 틈이 없어요”라고 하셨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보려던 나의 계획은 참 맹랑했다. 이후 자전거를 타는 2년 동안 그저 페달을 밟을 뿐이고 땀을 흘릴 뿐이고 냄새를 맡을 뿐이었다.

산속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자전거와 씨름하던 지난 주말, 6개월 만에 다시 자전거 위에 올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바퀴를 굴렸다.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떠난 이번 여행의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세상을 의미로 담을 수 없는 거라 포기하고 나니 너무너무 신나는 게 많아졌다. 내게 이런 행복을 가르쳐 주신 김창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윤정 MBC PD

■“이 PD 인내는 만리장성 쌓을걸요”

“여보세요, 김창완입니다. 아이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자전거 좀 세우고요. 잠시면 됩니다.”

14일 김창완(53) 씨에게 전화를 하자 시끄러운 소음이 먼저 수화기를 울렸다. 잠시 동안 가쁜 숨을 고른 그는 라디오 아침 방송을 마치고 이동 중이라고 했다. 이윤정(33) PD의 ‘별’인 그는 역시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방송국까지 지각하지 않으려 자전거로 출퇴근한 지 벌써 15년째. 이제 그는 ‘자전거 전도사’로 통한다. 자전거를 타라고 권유하는 걸 넘어서 아예 자전거를 사 준다.

“좋아하는 신부님한테도 사 드렸고, 친한 동생들에게도 몇 개 사 줬죠. 이 PD는 제가 속한 사이클팀 회장이 쓰던 자전거를 얻어다 타게 됐고요.”

가끔씩 이 PD와 우면산과 문형산을 오른다는 그에게 그녀의 자전거 실력에 대해 묻자 “보통 처음 타면 힘들어하는데 끄떡도 안 하던데요”라며 혀를 내두른다. “체력이 워낙 좋으니 그 친구 아마 태백 만항재도 가뿐히 갔다 왔을 겁니다.”

2005년 MBC 드라마 ‘떨리는 가슴’의 ‘바람’ 편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얼마 전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처음 이 PD를 봤을 때부터 누더기 같은 옷을 겹쳐 입은 폼이 범상치 않았다”는 그는 이번 작품을 끝내고 나선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이 PD에게는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는 권위가 있고 타지마할을 지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는 인내가 있어요. 아, 그것보다 지독한 표현이 있으면 쓰셔도 돼요. ‘커피프린스’ 촬영 40여 일 동안 매일 밤을 꼴딱 새우는데, 아유….”

그의 표현대로 ‘스태미나 넘치는’ 이 PD와의 다음번 만남은 ‘동해안 자전거 질주’가 됐으면 좋겠다며 그는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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