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서비스산업이 ‘새 챔피언’이다

  • 입력 2007년 9월 9일 2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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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일본에서 제조업을 꺼리는 젊은이들에게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책이 던져졌다. 제조업이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내용으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당시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소장이던 저자 마키노 노부루(牧野累) 씨는 “기가 죽어 있는 제조업에 응원가를 부르는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초고속 경제성장의 주역인 우리 제조업도 과거처럼 응원가가 필요한 처지다. 국내 제조업은 위축된 지 오래고,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 현장에선 198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과 부동산 투기 와중에 기업가정신이 흔들렸다.

조선, 휴대전화, 반도체, 자동차 등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품목을 포함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계속 지켜 낼 수 있다면 최선이다. 그러나 성장잠재력이 떨어져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게 현실적인 고민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제조업에 쏟은 노력과 지원을 서비스산업에도 나눠 줬어야 옳지 않았을까.

선진국으로 갈수록 서비스산업이 커진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우리도 이미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교육, 의료, 여행 등 고급 서비스를 찾아 나서는 우리 자신을 본다. “세상 많이 변했다”고 말해 가면서 국경도 쉽게 넘는다. 올해 1∼7월 외국인이 국내에서 쓴 여행경비는 32억 달러, 우리 국민이 해외여행에 쓴 돈은 92억 달러로 60억 달러 적자였다. 외국인의 국내 연수로 우리가 번 돈은 2500만 달러에 불과한데 우리 국민의 유학 및 연수비용은 그 100배가 넘는 29억 달러였다.

통신, 금융 및 보험, 부동산 및 기타사업자서비스 등 생산자서비스도 여행수지(收支)에 맞먹는 적자를 내고 있다. 국내 수요는 많은데 자급(自給)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 부문의 국내 서비스도 빠르게 성장하지만 세계는 더 앞서 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0년 이후 우리를 ‘서비스수지 만성 적자국’으로 분류했다.

국내 서비스산업은 줄곧 ‘찬밥 신세’였다. 인프라가 부족하고 규제가 너무 많으며 생산성은 낮다. 업체들은 영세한 데다 외국인 투자도 적고 개방도 덜 돼 있다. 실태 파악조차 미흡하다. 최근 정부가 두 차례 내놓은 경쟁력 강화 대책도 업계가 바라는 획기적인 규제 철폐가 아니라 정부가 일일이 도장을 찍어 가며 키워 주겠다는 식의 생색내기 수준이다.

서비스산업이 크면 제조업 성장에도 좋다. 지난 15년간 제조업 일자리는 67만 개 줄었는데 서비스업에서는 640만 개가 늘어났듯이 제조업에 비해 고용도 더 많이 늘릴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이 있다. 지식기반 서비스가 잘 육성되면 이 분야에서만 향후 15년간 30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가 서비스산업을 방치해 온 것이 오히려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말해 준다는 역설(逆說)도 가능하다.

어제 중국 다롄(大連)에서 폐막된 하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신생 글로벌 성장기업을 ‘뉴 챔피언’이라 불렀다. 국내에서는 미래의 성장엔진이 될 수 있는 서비스산업을 ‘새 챔피언’이라고 이름 붙이고 응원가를 불러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제조업 강국이며 서비스 적자국인 일본이 2005년 선정한 전략산업 7개 중 4개가 서비스 분야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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