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알렉산드로스의 길, 손학규의 길

  • 입력 2007년 8월 23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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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는 델포이에 들러 원정(遠征)에 관한 신탁을 구했다. 그러나 신탁은 그가 최근에 한 행동이 너무 무도(無道)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녀가 응답을 해 줄 수 없는 불길한 날에 찾아갔다. 무녀가 ‘오늘은 안 된다’고 하자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신탁소로 가려 했다. 결국 무녀가 ‘그대는 무적이오’라고 말했다. 바로 그가 원하던 대답이었다.…기원전 334년 봄, 원정군은 다르다넬스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그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이었다. 이제 세계는 전과 크게 달라질 터였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이클 우드는 자신이 제작한 BBC방송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펴낸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원제 ‘In the Footsteps of Alexander the Great’)에서 동방 원정의 출발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표현대로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그리스 이집트 바빌로니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 건설됐다. 우드는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아시아를 접촉하게 했으며…엄청난 역사적 에너지를 발생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역사적 에너지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명을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 탄생의 기폭제가 됐다.

22일 대선 선거대책본부를 꾸린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최근 자신의 한나라당 탈당과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헬레니즘에 비유했다. “문명과 문화가 충돌하고 합칠 때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일어난다”는 논리였다.

침소봉대(針小棒大)에 실소가 나왔다. 헬레니즘을 일으킨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을 떠나기 전에 이미 그리스를 제패했다. 21세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헬라스 동맹의 맹주(盟主)였다. 한나라당의 3등, 그것도 1, 2등에 지지율이 한참 처진 3등이었던 손 전 지사와는 여정의 출발부터 판이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동맹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떠났다. 반면 손 전 지사는 14년 가까이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시켜 준 정당에 ‘군정의 잔당’ 등의 독설을 퍼붓고 떠났다.

더욱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는 명분이 있었다. 그리스를 유린한 페르시아 정벌이었다. 손 전 지사는 탈당 때 “미래 평화 통합의 시대를 경영할 창조적 주도 세력을 만드는 데 나 자신을 던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도로 열린우리당’ 소리를 듣는 대통합민주신당에 자신을 던졌다.

무엇보다 헬레니즘은 역사의 진보였다. 그러나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경선 룰에 불복해 탈당한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렸다. 그의 탈당 행보가 정치적 성공을 거둔다면 역사의 퇴보이자 반동(反動)이 아닐 수 없다. 탈당 전력이 과거가 아닌 미래의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최근 손 전 지사는 “일반 국민 중에 누가 그렇게 탈당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경선 직후 박근혜 전 대표가 빠진 본보 여론조사에서도 그의 지지율(7%·20일)은 변화가 없다. 국민은 말없이, 얘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승리보다 아름다운 승복’으로 ‘미래’를 얻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던 손 전 지사는 ‘미래’를 잃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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