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병훈]‘사랑의 빚’ 갚아야 아름다운 나라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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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자신의 첫 번째 소원은 ‘대한 독립’이고 두 번째 소원은 ‘우리나라의 독립’이며 세 번째 소원 역시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했다.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돼도 여한이 없다는 그의 말에는 진심이 배어 있다.

우리가 받은 것 되돌려 줄 때

백범은 우리나라가 남을 지배하는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대신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다.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희망했다. 1947년, 아직 정부도 세우지 못했고 모든 일이 암담하기만 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생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실현되기를 간구했다.

백일몽(白日夢)을 꾸고 있다고 비웃음을 살 만도 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형편이 초라하지만 우리 민족이 힘을 기른다면 30년 안에 ‘세계 역사의 무대에 주연 배우’로 나설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 불과 30년 만에 세상은 천지개벽하듯 바뀌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가 각종 기록 ‘세계 1위’를 넘보게 됐다. 박태환이 수영에서,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 정상을 노린다. 전도연이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정도다.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배(杯) 축구대회에서 국가대표팀이 우승이라도 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그런 때가 아니다. 김구 선생이 지하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을지 모른다.

월드비전도 그렇다. 이 기독교 구호단체는 1950년 6·25전쟁의 상처 속에서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어스와 한경직 목사가 설립했다. 전쟁고아와 남편을 잃은 부인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월드비전은 이제 100여 나라에 지부를 둔 세계 최대의 기독교 비정부기구(NGO)가 됐다.

월드비전 한국본부는 1991년부터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전환했다. 오랫동안 남의 도움만 받고 살다가 이제 월드비전 미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김구 선생의 포부 그대로 ‘세계무대의 주연’ 역할을 당당히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를 찾은 것도 한 예다.

6·25전쟁 당시, 연 인원 6000명의 에티오피아 군인이 지구촌 반대쪽으로 날아왔다.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그들은 한국의 고아와 유가족을 위해 월급을 송두리째 모아 도와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6·25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코리안 빌리지’라는 한글 팻말 아래 같이 모여 산다.

모두 알다시피 이 나라는 최악의 가뭄과 홍수로 수백만 명이 죽음을 맞았다.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1996년 월드비전 한국은 ‘사랑의 빚 갚기’ 캠페인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이 동참하면서 후원금으로 학교를 짓고, 우물을 파 주며, 보건소를 세웠다. 농기구와 씨앗을 보급하는 등 그들이 자립하도록 사업장을 여러 군데 열었다.

월드비전 한국은 1년 예산의 30% 이상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어려운 나라를 돕는 데 쓴다. 물론 북한에도 정성을 쏟는다. 그들 뒤에서 17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1만 원, 2만 원씩 후원금을 낸다. 그들은 ‘나눔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그러면서 더 많이 돕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남을 도우면 뇌가 짜릿해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白凡이 꿈꾸던 나라 만들자

아직은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외국에서 받은 원조의 총액은 130억 달러나 되지만 우리가 남을 돕기 위해 쓴 돈은 22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총소득의 0.06%에 불과하다. 이래서야 인색한 나라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백범은 ‘사랑의 문화’로 인류 전체가 같이 의좋게 살 것을 꿈꾸었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했다. 김구 선생의 말처럼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어’ 보자.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길, 알고 보면 간단하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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