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軍이 기동훈련 미루고 ‘컴퓨터 워게임’ 하는 사연

  • 입력 2007년 8월 13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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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어제 을지포커스렌즈(UFL) 한미연합군사연습 기간에 실시할 계획이던 한국군 단독 기동훈련을 가을로 연기하고 병력을 동원하지 않는 ‘컴퓨터 워게임’만 하기로 했다. 국가비상기획위원회도 UFL 연습기간에 진행되는 을지연습 가운데 충무훈련을 10월로 미뤘다. 정부는 한미 양국군의 연합훈련과 행정부 차원의 비상사태 대비 훈련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계획을 이렇게 바꿔 버렸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추진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청와대의 설명에 담겨 있는 정부의 대북(對北) 접근 방식과 안보관이 걱정스럽다.

북은 남북 정상회담 발표 이틀 뒤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통해 UFL 연습을 비난했다. 청와대는 “(연기 또는 축소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바람을 잡더니, 결국 북의 비위 맞추기에 초점을 맞췄다. 임기를 6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의 평양행(行)을 위해 야외 기동훈련을 미루고 ‘컴퓨터 워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 나타날 우리 군(軍)의 정신적 이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두렵다.

북은 정상회담 준비 접촉을 13일 개성에서 갖자는 우리 측 제의를 나흘 동안 묵살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북은 기동훈련 연기 사실이 알려진 어제 오전에야 수정 제의를 담은 전화통지문을 보내 왔다. 준비 접촉 전(前)단계부터 남이 북에 기선을 제압당한 꼴이다.

재향군인회 김문기 대변인은 “연례적이고 통상적으로 해 온 한미 군사훈련의 일정을 북한이 반대한다고 해서 변경하는 것은 주권(主權)국가의 체면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의 체면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양보를 하다 보면 북한의 목소리만 키워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설익은 자주(自主)국방론을 펴면서 국민 부담을 급증시킨 정부가 유독 북에 대해서만은 ‘자주적이지 못한’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UFL 연습은 지난달 북한에도 통보한 훈련이다. 필요하다면 북한 참관단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었다. 북에 질질 끌려 다니는 정부를 보면서 우리 장병들이 유사시 조국과 부모형제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결의를 다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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