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X파일 만드는 ‘법 위의 정보기관’

  • 입력 2007년 7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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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이야기다. 미모의 금발 여인이 뉴욕에서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수사 결과 수년 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살인사건의 주범이 이름과 직업을 세탁한 후에 제2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의 동일성을 인식할 수 있는 법적체제가 존재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서양에서는 사람의 지문을 채취하거나 백넘버를 부여하는 행위를 인간의 인격권에 대한 모독으로 보았다. 당사자가 스스로 필요해 발급받는 사회보장번호나 여권번호만이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하는 유일한 표지였다.

2001년 9·11테러 이후에는 사정이 완전히 변했다. 직접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고나 할까. 미국 본토가 처음으로 침공당하자 국가안보 앞에 과거의 이론은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이제 미국에서는 지문 채취는 물론이고 눈동자까지 검색체계에 포섭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출생신고와 더불어 고유번호를 부여받는다. 주민등록제도는 사람을 백넘버로 옥죈다. 남용이 문제되지만 범인 색출이나 국가안보에는 유효하다. 사람이 붐비는 역이나 터미널에서 경찰관은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한다. 경찰관은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무전기로 범죄혐의 등을 확인한 후 경례로 예의를 갖춘다(주민등록법 제26조).

대한민국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전 국민에 대한 정보의 보유, 관리, 처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손쉽게 한다. 소득 납세 의료 교육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모든 자료가 행정전산망에 기록된다. 정부 기관이 보유한 파일을 컴퓨터로 연결하면 모든 사생활이 손바닥처럼 드러난다.

이제 국가권력은 물리적 힘에 의한 폭력적 지배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정보사냥을 통해 공작통치가 가능하다. 더구나 위치정보 이용 시스템,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서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야말로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그린 빅 브러더(big brother)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계절에는 언제나 남의 사생활을 엿듣고 이를 악용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난무하는 X파일도 실은 정보사냥꾼에 의한 분탕질이다. 여기에 권력기관이 개입하면 정보의 정확성이나 파급 효과는 가히 폭발적이다.

모든 정보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정보기관 종사자의 유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리 쉽게 농단당하지는 않는다. 언제 누가 관련 국가전산망에 접속했는지 분명한 자국을 남기는 안전망이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검증과정에서 후보의 사생활이 베일을 벗고 있다. 주권자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는 적법절차를 통해 처리되고 밝혀져야 한다.

숨어서 뒷조사하거나 정부 정보를 악용해서는 안 된다. 검증의 탈을 쓴 악마의 유혹은 뿌리쳐야 한다. 국가기관이 보유한 국민의 정보는 국익과 개인의 인격을 조화하는 방향으로 작동돼야 한다. 국가 정보가 권력기관의 대국민 사찰용으로 악용되는 시대는 종식돼야 한다.

모든 법과 제도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CCTV는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공공의 안녕질서 확보에는 더 유효한 수단이 없다. 정보사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가야 하지만 인간이 발명한 기술에 의해 스스로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사람이 물화(物化)되어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중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음은 인간성을 갖기 때문이다. 차제에 논의만 거듭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사항은 특별법을 제정해 권리와 법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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