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호열]남북정상회담의 환상

  • 입력 2007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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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서 시도 때도 없이 거론되는 것이 남북 정상회담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작년 8월 북측에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6자회담에는 복귀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불을 보듯 뻔하게 임박했기에 부득불 취할 수밖에 없었던 조처라고 했다. 북한은 남쪽 제안에 묵묵부답인 채 핵실험을 강행해 버렸다.

여권 ‘대선 반전카드’ 목매

금년 들어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되고 2·13합의가 도출되면서 북핵 문제는 6자회담 틀 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중이다. 그러자 현 정부 고위 관계자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정치인이 이구동성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반도 정세가 극적으로 호전되었기에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현 정부와 여권 정치인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회담 연내 개최에 목말라 애태우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수령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매우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과거 동서 냉전시기 미소, 미중 간 정상회담은 데탕트 시대를 열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동서독 관계에서도 정상회담은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였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성과를 거둔 것도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서였다.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이 활발해지고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나 남북 도로철도가 연결된 것도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전한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상회담은 어디까지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우 비정상적인 체제인 북한을 상대로, 첨예한 안보 위협이 상존하는 조건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은 지극히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종석 전 장관의 발언에 비추어 볼 때 현 정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현 정부와 여권 정치인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몰두하는 이유가 정권 재창출에 있음을 모를 사람은 없다. 여권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남북 정상회담을 연내에 개최함으로써 획기적인 국면 전환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대선을 불과 5개월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정당을 급조하고 이렇다 할 후보조차 없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친북 대 반북의 양대 구도를 조성하여 극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해결-선거정국 도움 안 돼

남북 정상회담은 필요할 때 적절한 방식으로 개최해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기로 약속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한 대로 적절한 시기에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 응하면 된다.

다만 이제까지 북한의 상황과 태도를 보면 남북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 의지가 확인된 연후에 정상회담을 개최해도 결코 늦지 않다.

정략적 차원에서 섣부르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대선 정국을 혼란에 빠지게 할 뿐 북핵 문제 해결이나 남북관계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 정부나 여권 정치인, 김 위원장이 변칙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의 허와 실을 체득한 국민을 상대로 정권 재창출의 꿈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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