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비정규직 보호법 정착” 어정쩡한 합의

  • 입력 2007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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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표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이 자리에서 경제계, 노동계 양쪽 모두의 불만을 사고 있는 비(非)정규직 보호법의 정착을 위해 노력한다는 원론적인 합의문을 발표했다.

“법을 시행한 지 며칠 만에 고치자는 주장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려는 것”이라며 현행법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들의 엇갈린 시각은 분명히 드러났다.

노동계를 대표해 이 자리에 나온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 보호법과 관련해 최대 현안이 된 ‘이랜드 사태’에 대해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이 법의 취지를 이랜드 측이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도 “이랜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들었다.

반면 경제계를 대표해 참석한 이 회장은 “이랜드 측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먼저 노조 측이 농성과 파업부터 풀어야 대화가 가능하다”며 협상의 순서를 제시했다.

게다가 이날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불참했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계열 유통매장 점거에 참여한 ‘당사자’다. ‘왜 민주노총이 빠졌느냐’는 질문을 받은 이 장관은 “민주노총은 이번 법의 정착에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합의문이 나온 이날 밤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에서는 이랜드 노조원, 민주노총 관계자가 경찰과 충돌해 26명이 연행되는 등 갈등도 격화됐다. 또 민주노총은 자신들이 빠진 노사정 합의를 ‘야합’이라고 비판하며 법의 개정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상황을 지켜본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가 손만 쥐여 줘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 측이 계속 ‘실력행사’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이 겪는 어려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한 강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날 합의는 결국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노동계의 한 축이 빠진 상태에서 정부와 한국노총이 경제계에 “더 양보하라”고 몰아붙인 셈이 됐다.

김기현 사회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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