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서령]女부장, 男과장

  • 입력 200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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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났다. 올해 외무고시 최종 합격자 31명 중 여성이 21명이라고 한다. 전체의 67.7%를 여자가 차지했다고 시끄럽다. 반대일 때도 언론은 호들갑스레 보도했었다. 전체 31명 중 10명이 여자이며 무려 33%를 차지했다고!(작년 사법시험이 대략 그런 비율이었던 것 같다.) 어젯밤 술자리에선 국가고시 남성할당제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사법 행정 외무 지방고시, 7급 공채, 9급 공채의 여성 합격자 수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한다. 2004년엔 희한하게도 공인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감정평가사를 포함한 8개 주요 국가자격시험의 수석이 모조리 여자였다.

‘Ms. 과장님’ 10년 새 15배 증가

그제 신문엔 올 2월 모 시중은행 상반기 과장 승진자 114명 가운데 여성이 40%나 됐다는 소식이 실렸다. 10년 새 ‘Ms. 과장님’이 15배 증가했다는 통계를 들여다보며 나로서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1996년 50대 그룹 586개 기업 중 과장급 이상 관리자는 0.7%(11만 명 중 729명)였는데 지금은 10.2%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 통계는 거꾸로 외무고시 여성 합격률의 숨은 진실을 해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기업이 이토록 보수적으로 여성 엘리트에게, 눈앞에 바로 보이지만 닿기는 까마득한 ‘유리천장’을 장착해 두었으니 유능한 여성 인력은 국가고시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행히 유리천장이 깨질 조짐이다. ‘15배 증가’ 같은 타이틀이 신호탄임이 확실하다. 놀랄 일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1990년대 초중반 내 딸이 초등학생 때 직접선거로 뽑은 학급 반장은 전 학년이 여자였다. 나는 차세대 여성 리더의 부각을 그때 이미 감지했다.

여성에게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건 남성 위주 세상이 유포한 미신에 불과하다. 여학교를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우리 친구 중에 몇은 반드시 포용 통찰 용기 결단 희생 같은 미덕을 두루 갖춘 탁월한 리더였다. 여성의 파워와 에너지를 가정 안으로만, 하급직으로만, 억지로 짓눌렀기에 생겼던 부작용은 어렵지 않게 손꼽을 수 있다.

우주가 음양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때 양은 하늘이고 음은 땅이다. 양인 남자는 하늘이고 음인 여자는 땅이다. 철학체계로도 신체구조로도 그 자체엔 불만도 이견도 없다. 문제는 거기서 파생한, 하늘은 마땅히 땅 위에 군림해 비나 눈을 뿌려 주는 존재이고 땅은 수동적으로 그걸 받아 마시며 생명을 키워 내야 한다는 해석에 있다. 땅인 여자가 하늘인 남자나 차지할 수 있었던 높은 벼슬에 우르르 올라서는 일에 대한 경계와 우려가 일말의 사회적 불안을 낳았나 보다.

염려할 것 없다.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니 이런 과도기조차 재빨리 지나가리라 믿는다. 유엔은 얼마 전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사회 조사에서 여성 차별에 따른 손실을 매년 800억 달러로 추산했다. 이 중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 제약에 따른 손실만 420억∼470억 달러라고 한다. 현재도 존재하는 성 차별의 정도를 보여 주는 동시에 여성의 경제적 잠재력을 웅변하는 지표이다.

유리천장 깨져야 남성도 행복

새로운 리더로서 여성의 장점을 새삼 열거하는 일도 번거로운 노릇이다. 다만 한 가지, 여성의 약진이 결코 남성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라는 점만은 통찰했으면 한다. 공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몽골의 사막화가 한국에 황사를 가져오듯 세계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이미 아는데 동시대 동지역 남녀 간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여성 부장에 남성 과장! 자연스럽기만 한 그 풍경에 저항할 것인가. 여성의 유리천장이 깨질 때 더 행복해지는 건 남성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원했던 양성평등 세상이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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