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저가(低價) 여행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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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남에게 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결혼, 둘째는 전쟁, 셋째는 성지순례다.” 옛날엔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여행 자체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교통수단이 별로 없던 시절 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라도 떠나면 왕복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탈리아에서 출발해도 6개월은 잡아야 했다. 도중에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상속인을 지정해 놓고 장도에 올랐다. 실제로 질병에 걸려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평생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밖에 없었다. 외국 여행은 곧 중국 여행을 뜻했으나 소수 지식인들만이 행운을 누렸다. 18세기 학자 이덕무는 첫 중국 여행의 감격을 이렇게 편지에 썼다. ‘내일 압록강을 건너면 이제 정말 중국 땅입니다. 생각만 해도 유쾌합니다.’ 서울을 떠나 압록강까지 가는 데만 한 달이 걸렸고 연경(燕京)을 다녀오는 데는 6개월이 소요됐다. 먼 길을 떠나는 날은 친구와 친척들이 모여 큰 송별 행사를 벌였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꿈에 그리던 로마에 도착한 뒤 ‘나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 날’이라고 적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는 여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고 했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여행은 설레는 마음과 함께 크든 작든 위험을 동반한다. 최근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에도 ‘유행’이란 게 생겼다. 배낭여행가 한비야 씨 같은 사람들이 개척한 오지여행이나, 적은 비용으로 알뜰하게 다녀오는 저가(低價)여행이 그것이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던 한국인 13명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전원 목숨을 잃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캄보디아뿐 아니라 폭넓게 이뤄지고 있는 저가여행의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사고를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해외여행에 불합리하고 무모한 구석이 없는지 철저히 살펴야 한다. 여행자 스스로 위험요소를 줄이는 데 더 세심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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