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그놈의 헌법’

  • 입력 2007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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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고 규범인 헌법이 ‘그놈의 헌법’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헌법에 손을 얹어 국민 앞에 엄숙하게 헌법 준수를 선서하고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에 붙인 불명예 딱지다. 준수해야 할 헌법이 대통령 집권 4년 반을 지나는 동안 경멸과 방해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국민이 어렵게 만든 역사적 산물이다.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과 공감적 가치가 담긴 규범적 표현물이다. 노 대통령의 헌법 폄훼는 바로 헌법을 쟁취한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6월항쟁 정신 담긴 최고 규범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도 헌법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헌법을 근거로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영예는 다 누린 대통령이 퇴임을 불과 여섯 달 남짓 앞둔 시점에 이처럼 헌법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기야 노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제대로 된 헌법 인식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정당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준 정당을 임기 초에 탈당하고 새 정당을 만든 행위부터가 정당대의민주주의 헌법정신에 어긋난 일이었다.

위헌적인 수도 이전 결정과 언론관계법 제정을 비롯해서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을 넘어 최근의 기자실 폐쇄 정책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은 헌법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그만인 통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사면권 남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그는 ‘헌법상의 고유 권한’임을 강변하면서 묵살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그런 고유 권한을 준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헌법이 강조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정당한 권한 행사의 참뜻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자유를 희생하는 좌파적 평등지상주의 교육정책과 경제정책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헌법 이념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진부한 민족주의를 빙자한 대북정책으로 국가 안보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 불법 시위문화를 조장해서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 부채를 양산하면서 재정헌법의 근본이념을 무시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이처럼 수준 낮은 헌법 인식을 가지고 헌법을 무시 내지 모독하는 모습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구보다도 앞장 서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이 추구하는 통합규범적인 기능을 실현하는 데 힘써야 할 대통령이 반(反)통합적인 분열주의를 조장하면서 ‘그놈의 헌법’ 타령만 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 헌법국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그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헌법 개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비록 헌법 개정 발의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시기에 헌법 개정을 정치 이슈로 삼아 여러 달에 걸쳐 불필요한 소모적 정쟁을 유발했던 일도 헌법 경시적인 인식의 표현이다.

폄훼하는 노 대통령은 국민 무시

노 대통령은 아마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헌법과의 갈등을 가장 많이 유발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독재정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헌법을 장식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 준수를 요구하며 시비를 건다는 것부터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명색이 민주적 대통령이고 자칭 ‘세계적인 대통령’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헌법이 추구하는 공감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 주권자 다수가 아직은 ‘헌법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통령의 헌법 폄훼와 국민 모독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항의하면서 헌법을 더는 폄훼하지 말도록 촉구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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