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9단이 이창호 9단을 누르고 국수전 도전권을 땄을 때 이를 전해들은 조남철 9단은 가시 있는 농담을 던졌다. “루이가 국수에 오르게 되면 우리 남자기사들한테 가위 하나씩 선물해야겠구먼.” 후배 남자기사들에게 국수의 이름이 지닌 상징성을 은연중 주지시킨 말이기도 했다. 국수가 어떤 타이틀인가? 한국바둑의 대명사다. 그런데 중국 국적을 가진 이방인에게, 그것도 여성기사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곧 한국바둑의 옥새를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바둑계의 반응은 경악을 넘어 참담에 가까웠다. 이기면 본전이요, 지면 망신살 뻗치는 대결. 조훈현 국수의 부담은 태산 같을 수밖에 없다.
흑이 아래 위 양쪽 백대마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실수를 저질러 백 98로 머리를 내밀게 해주었다. 이 바람에 승부는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어차피 빼든 칼이었다. 흑 99로 아래 백대마를 겨누었을 때 백 100이 패착이었다. 흑 101로 차단하자 패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마땅한 팻감이 없는 백으로선 106, 108로 덩치가 큰 대마를 살리고 보았으나 위쪽 백 ◎가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국후 루이 9단의 첫마디였다. 뜻밖의 묘수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백 100으로 참고도 백 1로 먼저 끼웠더라면 여성국수의 탄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흑은 2, 4로 둘 수밖에 없는데 이하 백 13까지 우하귀 흑과 수상전이 벌어진다. 이어 흑 14로 자세를 잡으면 백 15로 또 한번 끼우는 수가 흑의 수를 확 줄이는 묘수. 백 25까지 수 싸움이 되지 않는다. (107…○)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