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큰 정부’의 예산 낭비, 납세자의 고혈과 한숨

  • 입력 2007년 4월 24일 2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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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250조 원이 넘는 내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 지침을 확정했다. 올해 총지출보다 7∼8% 늘어나는 규모로 증가율이 6년 만에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이 많이 늘어나는 분야는 주로 복지 확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완 대책, 2단계 균형발전계획이다.

노무현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책임 있는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재정 지출과 공무원을 대폭 늘리는 몸집 불리기에 바쁘다. 청와대브리핑은 ‘지출예산으로 본 역대 정부 성격 비교’라는 최근 보고서에서 “역대 정부와는 달리 참여정부는 복지예산 비중을 20%에서 28%로 늘려 경제 분야(18%)를 앞질렀다”고 자랑했다. 복지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집행하면 경제사회적 열매를 키우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나눠 먹는 데 그치기 쉽다.

‘먼저 보는 자가 임자인 눈먼 돈’ 넘쳐나

재정이 새는 구멍이 얼마나 많은지는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농촌에는 상당수의 미곡종합처리장 시설이 비어 있다. 전국 미곡처리장의 시설용량은 2600만 t으로 국내의 연간 쌀 생산량 500만 t의 5배가 넘기 때문이다. 활용률이 낮으니 당연히 적자투성이다. 감사원은 미곡처리장에서 낭비된 예산이 1300억여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보관할 물량이 없어 텅텅 빈 채 어린이 놀이터가 돼 버린 농산물 저온저장고도 한둘이 아니다.

농촌에는 ‘눈먼 돈’이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정부가 투입한 60조 원 이상의 농어촌 구조조정 자금이 한몫했다. 내년 예산부터 한미 FTA 타결에 따른 피해산업 지원이 예정돼 있다. 진짜 구조조정이 아닌 세금 나눠 주기 식 지원으로 농촌 및 농업문제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개방을 통한 산업구조 선진화’를 목표로 하는 FTA가 농촌에서 산업과 시장의 작동원리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정책자금은 마약”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번 얻어 쓰면 중독된다. 힘들여 사업할 생각은 않고 그것만 찾아다니게 된다. 벤처자금, 중소기업지원자금, 산업자원부 첨단사업자금, 경기도 정책자금을 돌아가며 쓰는 기업도 있다. 공무원이 주무르는 돈이 너무 많다.” 이런 기업은 생산과 영업으로 이익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번지르르한 정책자금신청서’를 잘 만드는 것으로 한몫 잡으려 한다. 임자 없는 ‘공돈’을 먹고사는 생태계를 떠받치는 것은 납세자의 고혈과 한숨이다.

혈세(血稅)가 새는 곳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차세대 국가성장동력 사업이라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술개발의 경우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각자 기술개발에 나서 관련 사업을 따로 발주했다. 국가경쟁력까지 좀먹는 행태다. ‘비전 2030’에서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선택적 복지사업과 여성가족부의 장애가정 아동양육지원이 겹친다. 이렇게 여러 부문에서 복지지출이 중복으로 일어난다.

살림이 넉넉한 지방자치단체는 해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한다. 예산을 남기면 다음 해 예산이 깎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구청은 외빈용이라며 3300cc급 에쿠스 승용차를 구입했으나 창고에 처박아 두고 있다. 서울우편집중국은 소포를 차량에 싣는 컨베이어벨트를 구입했으나 딱 세 번 쓰고 말았다. 규격이 맞지 않아서다. 경기도의 한 도시는 시청사를 정부중앙청사보다 크게 지었다.

이 모두가 공공부문의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보여 주는 사례다. 자기 주머닛돈이라면 이렇게 펑펑 쓸 리가 없다. 공공부문은 원래 주인정신이 부족하다. 경쟁도 없고 도산할 염려도 없다. 경영마인드가 적고 비용 개념이 희박하다.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도 모자란다. 목표 자체를 평가하기도 복잡하고, 여러 기관이 관여돼 있고 인사(人事)도 잦아 책임 소재를 가리기도 힘들다.

욕심 많은 無能정부의 ‘민생 괴롭히기’

공적(公的) 모럴해저드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맡기는 것이다. 즉 ‘작은 정부’다. 도저히 민간에 맡길 수 없는 일이라면 성과를 엄밀히 검증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과정과 결과의 투명성 면에서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아예 손을 떼는 게 낫다. 제도가 잘못돼서 생기는 공공자원의 낭비는 그 자체로도 큰 문제지만, 전후방 연관효과가 커서 시장 전체의 저효율과 기형화를 낳는다. 공공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행정은 납세자인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고, 민생을 해치는 공공의 적(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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