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미드族

  • 입력 2007년 3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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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신세대인가, 구세대인가’를 가르는 최신 버전의 퀴즈 하나. ‘스리 잭(Three Jack)’을 아는가? 모른다면 당신은 신세대가 아니다. 3명의 ‘잭’은 국내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돼 인기를 얻은 미국 드라마 ‘24’의 대(對)테러요원 잭 바워, ‘앨리어스’의 이중스파이 잭 브리스토, 한국 배우 김윤진도 출연해 화제가 된 ‘로스트’의 외과의사 잭 셰퍼드 등 3명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외국의 인기 영화나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보게 되면서 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이에 따른 신조어도 통용된다. 미국 드라마는 ‘미드’로, 열광팬은 ‘미드폐인(廢人)’이나 ‘미드족(族)’으로 불린다. 인터넷과 케이블TV가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 낸 셈이다. ‘미드’는 국내 드라마의 중심소비층이 아니던 20, 30대까지를 드라마 마니아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프렌즈’나, ‘된장녀’ 바람의 진원지라는 ‘섹스 앤드 더 시티’는 영어회화 교재로 각광받을 정도다.

▷“석호필!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영국 배우 웬트워스 밀러의 팬 미팅이 있었다. 밀러는 미국 폭스TV의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에서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 역을 맡아 한국에서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국 팬들은 ‘스코필드’에게 ‘석호필’이란 우리식 이름까지 붙여 줬다. 스코필드뿐이 아니다. 범죄수사 드라마 ‘CSI’의 길 그리섬 반장에게는 ‘길 반장’, 병원 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 하우스 박사에게는 ‘하 박사’란 애칭을 달아 줬다.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고, 기업 드라마는 회사에서 연애하고, 사극 드라마는 삼국 고려 조선에서 연애한다.’ 천편일률적인 한국 드라마를 조롱하는 말이다. 불륜과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사고와 기억상실, 고부 갈등, 신분 상승과 이를 둘러싼 암투…. 이런 구태의연한 소재와 플롯으로는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시청자들을 더 붙잡아 둘 수 없다. 미드 열풍은 한국 드라마의 위기를 웅변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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