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토지 보상금 수령자’ 찜찜한 뒷조사

  • 입력 2007년 3월 1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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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짜리 아이 이름으로 서울 강남의 3억 원짜리 땅을 사들였다면? 설문조사를 해보면 투기꾼이라는 응답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살던 집을 내놓는 조건으로 보상금을 받아 땅을 좀 샀는데 정부가 대뜸 부동산 거래내용을 모두 조사해 일부는 국세청에 통보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어떨까요. “돈 줄 때는 언제고 뒷조사 하는 건 또 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요.

건설교통부가 9일 ‘보상금 수령자 및 가족의 부동산 거래내용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본보 10일자 31면 참조
▶토지보상금 38% ‘부동산 U턴’

작년 상반기(1∼6월)에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에서 토지보상금을 받은 1만9315명과 가족 5만9544명의 1년간 부동산 거래 내용을 모두 분석해 이 중 226명을 국세청에 통보했다는 내용입니다. 건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조사는) 보상금의 부동산 시장 영향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구축하고, 이를 정책 수립과 부동산 투기 단속에 활용한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정부가 늦게나마 보상금 관리에 나선 건 박수를 보낼 만합니다. 하지만 국가균형개발을 한다면서 막대한 금액의 보상금을 뿌려 지방 부동산 시장까지 들썩이게 한 건 누구입니까.

보상금 수령자들이 자기 집과 땅이 수용된 뒤 인근 부동산을 다시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보상금이 전국에 뿌려져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면 사후 관리에는 소홀한 채 개발계획을 밀어붙인 정부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보상금 수령자들의 부동산 거래내용을 모두 조사해 언론에 발표한 건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감춘 채 이들을 모두 잠재적 투기꾼으로 몰아붙여 땅값 상승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합니다.

물론 보상금을 받아 자녀 명의로 강남 아파트를 샀다면 증여세를 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증여세 안 낸 몇몇을 적발해 봤자 한 번 풀린 돈을 거둬들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올해도 10조 원 규모의 보상금이 새로 풀릴 예정입니다.

정부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빅 브라더’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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