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김경집 교수가 존경하는 강효 줄리아드음악원 교수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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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뉴욕 줄리아드음악원 교수로서 장영주, 길 샤함, 김지연, 용재 오닐 등을 따뜻한 제자 사랑으로 키워 낸 강효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 자신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뉴욕 줄리아드음악원 교수로서 장영주, 길 샤함, 김지연, 용재 오닐 등을 따뜻한 제자 사랑으로 키워 낸 강효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가톨릭 신자이면서 종교다원론자인 김경집 교수에겐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교수의 미소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염화미소가 아닐까. 이훈구 기자
가톨릭 신자이면서 종교다원론자인 김경집 교수에겐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교수의 미소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염화미소가 아닐까. 이훈구 기자
○ 짧은 만남, 긴 여운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에 꼭 들어맞는 이가 있습니다. 강효(63)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따로 뵙거나 직접 대화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글을 쓸 자격이 원천적으로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음악회에서 먼발치로 봤거나 연주회장 로비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게 전부입니다. 제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딱히 할 말도 없었거니와 저 자신이 숫기가 없어서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가볍게 목례만 한 게 직접적인 인연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제게 활짝 핀 미소로 답례하던 그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미소는 그가 쌓아온 어떤 음악적 성취보다 제겐 큰 의미와 가치로 여운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살면 저이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담뿍 머금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마흔이 넘으면서 그분은 제가 닮고 싶은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 ‘백만 불짜리’ 미소

연초에 ‘나이듦의 즐거움’이란 산문집을 내면서 그분에 대한 꼭지를 담았더니 많은 사람이 그분에 대한 짧은 소개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끌린다는 e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1964년 한국에 공연차 왔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벌 세놉스키에게 오디션을 받았는데 세놉스키는 그 자리에서 그를 미국에 데려가겠다고 했답니다.

그는 줄리아드에 입학해서 도로시 딜레이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제자의 어두운 기색을 읽은 스승은 자기 집에 불러서 그림을 함께 그리며 그의 향수병을 달래 주고 스스로 음악에 몰입할 여유를 주며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마 어쩌면 그가 삶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너그러움과 따뜻함을 갖게 된 건, 그의 천성에다 이런 인연들이 쌓이고 익어서 생긴 것이라 생각됩니다. 줄리아드 대학원을 마친 청년 강효는 드디어 1976년 줄리아드에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자신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지만 그의 진가는 가르치는 일에서 도드라졌습니다. 수많은 그의 제자 가운데 장영주, 길 샤함, 김지연 등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의 교수법은 배우는 이로 하여금 평생 그와의 만남 자체를 인생의 고마움으로 간직하게 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 칭찬과 자각이 길러낸 예술혼

그이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자를 맞는 건 수줍은 듯 따뜻한 그의 미소입니다. 흔히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의 모자람에 자꾸 눈길이 머물고 그것을 고치려고 훈계도 하고 야단도 칩니다. 그러나 스승 강효는 제자들의 좋은 점을 먼저 꺼내고 칭찬하고 격려함으로써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을 갖게 하고, 자연스럽게 미흡한 점까지 제 눈으로 찾아서 극복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게 말은 쉬울지 모르나, 저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관점에서 보건대 엄청난 인내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스스로 키워서 더 잘하게 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교수법은 없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의 제자에 대한 근원적 사랑이 없으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 휴머니스트 강효

그의 연주 능력도 교수법도 뛰어나지만 제가 그이를 나머지 삶의 본으로 삼으려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의 따뜻한 휴머니즘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씨가 전하는 일화는 그의 품성을 그대로 전해 줍니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가 강효 교수에게 교습비를 낸 다음 날 강 교수가 그를 부르더랍니다. 그의 아버지께 ‘감사 카드’를 썼으니 전해 드리라 해서 아버지께 드렸는데, 거기에는 교습비와 함께 이런 글이 담겨 있더랍니다.

“지연이 같은 재능 있는 아이를 가르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연이가 크게 성공하면 그때 아버님과 술 한잔 함께하면 어떨까요?”

부녀가 눈물을 흘렸을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던 저도 눈물을 흘렸으니까 말입니다. 그냥 돌려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상대의 마음을 보듬으며 마음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삶이 그 결대로 따르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이에게 배운 사람들은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의 예술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그대로 전하고 나누는 전령이 되겠지요.

그의 인품을 가늠할 또 하나의 사례는 용재 오닐입니다. 강효 교수가 창단하고 지도하는 세종솔로이스트의 멤버가 된 그는 누구나 선망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입단 승낙을 마다하고 강 교수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일 겁니다.

제자들이 더 좋은 악기를 대여 받도록 주선하고, 더 좋은 매니지먼트사를 물색해 주는 걸 자신의 기쁨으로 삼고 사는 사람, 모국에서 ‘대관령국제음악회’를 꾸리고 이끌어가는 사람.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진솔하며 품위 있는 사람. 그 ‘백만 불짜리’ 미소는 한 줌의 가식도, 억지로 지어낸 것도 아니기에 그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런 이를 남은 삶의 본으로 삼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싶습니다. 넘치고 남을, 그러나 그 자체로 함함한 ‘내 마음의 별’입니다.

김경집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 ‘쉰의 문턱에서 닮고 싶은 사람’ 강효

뜻밖이었다. 김경집(48) 교수가 연초에 펴낸 산문집 ‘나이듦의 즐거움’에서 동네 어귀 느티나무 옆 자그마한 정자에 비유하며 ‘쉰의 문턱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강효 교수를 그저 먼발치에서 두 번 봤을 뿐이라는 이야기는.

“중학생 때부터 클래식감상실을 다닐 만큼 클래식음악을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엔 피아노, 기타, 첼로를 배웠고 최근엔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작부터 강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기사도 많이 봤습니다. 특히 저희 형님과 형수님이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셨기 때문에 강 교수님의 제자 사랑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렇지만 김 교수가 강 교수에게 푹 빠져 든 것은 6년 전쯤 강 교수가 이끄는 세종솔로이스트 연주를 직접 보고 난 뒤였다.

“정말 그렇게 웃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수줍은 듯 한발 물러서면서도 오히려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그런 웃음이었어요. 공연 도중에도 다른 공연자들에게 끊임없이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그 웃음을 짓는데 이게 보통 연주자들의 경우엔 자기감정에 몰입하느라 힘든 일이거든요.”

김 교수는 마침 그즈음 가톨릭대만의 특화 프로그램인 ‘인간학’과 ‘영성학’이라는 교양필수과목을 가르치면서 사제 관계의 중요성에 새롭게 눈떠 가던 때였다.

그가 맡은 과목은 정보(information)의 홍수로 인해 쓸모없는 정보가 넘쳐나는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의 시대를 헤쳐 갈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올바른 판단력과 제대로 된 인성,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을 키워 줄 종합적 인문교양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인문학과 담을 쌓은 학생들에게도 흥미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 강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한다고 했는데 이게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강 교수의 미소는 그런 힘든 과정을 이겨낸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김 교수는 그즈음부터 교수들의 근무시간에 의무적으로 할당된 학생면담 시간을 제자들에게 공개했다. 그 시간은 ‘너희의 고민을 들어 줘야 할 시간’이므로 언제든 찾아오라는 공표였다.

그것은 “일류 학자는 못 되더라도 제자들에게 정말 일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그 곁을 지켜 주는 스승이 되겠다”는 자신과 한 약속의 작은 실천이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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