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남은 1년의 희망, 글로벌시티

  • 입력 2007년 2월 15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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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자가 아무리 유능해도 승진엔 불리하다는 조사가 있다. 콘페리 인터내셔널이라는 미국 조사기관이 경영자 1300명에게 물었더니 68%가 자주 보는 사람을 발탁하더라는 거다.

거리(距離)가 사라져도 지리(地理)는 영원하다는 ‘역설(逆說)의 경제지리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해도 대면(對面)접촉을 원하는 인간 본성은 못 당한다. 인터넷 상거래가 늘어도 사람들은 북적대는 시장을 굳이 찾아가 보고 듣고 말을 나누고야 만다. 패션부터 첨단 테크놀로지까지, 세계시장의 견본시장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밀라노가 대표적이다.

‘똑똑한 도시’가 나라 먹여 살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그냥 산업도시였던 밀라노가 전통적 장인기술에 정보 테크놀로지와 서비스 산업을 결합시켜 산업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중심으로, 글로벌시티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유럽 중심부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이다. 독일 프랑스 시장과 바로 연결된 수출입 관문이면서 자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40%를 유치한다. 여기서 앞선 지식과 기술을 확대 재생산해 이탈리아 경제를 끌고 갈 정도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끈질긴 경쟁력은 위치”라고 했다. 선수는 선수끼리 알아보기 마련이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세계적 기업은 최고의 인재와 최상의 인프라를 완비한 글로벌시티로 몰려가 세계시장을 놓고 경쟁한다. 지난달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이 “핵심 대도시가 그 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암만 균형적으로 생각해 봐도 우리의 대표주자로 뛸 도시는 서울 말고는 없다. OECD는 지난해 4월 서울을 평가한 정책보고서에서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동북아의 메가시티와 경쟁할 만한 곳이 서울”이라면서도 “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이 있는 인천 등 수도권과 연합해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을 20세기에 두고 홀로 21세기에 산다는 대통령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억눌러 지방과 하향평준화하는 국토균형발전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공공정책과 지리학 교수인 앨런 스콧 씨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이고, 노무현 정부의 백서에 따르면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유물이다.

2006년 규제개혁백서는 “(수도권 관련 규제 등) 정책적 규제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시장경제의 개념이 자리 잡히기 이전인 정부 주도하의 경제 환경에서 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처럼 규모가 커지고 세계화된 우리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외부평가를 통해 밝혔다. 그런데도 어제 행정자치부 장관은 모든 법령과 정책에서 서울의 점수를 깎을 게 뻔한 ‘지방 영향평가제’를 하겠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노 정권 임기가 1년 남은 지금, 믿을 곳은 글로벌시티의 마인드를 갖춘 지방자치단체밖에 없다. OECD 역시 사회통합은 세금이나 보조금을 통한 분배 정책이 아닌, 규제를 풀어 그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밀라노의 세계시장이 인천에

인천시는 인천공항과 항만, 경제특구의 경쟁력을 서울까지 잇는 ‘2009 도시엑스포’ 프로젝트를 지난주 밀라노 ‘빌드업 엑스포’에 출품했다. 이를 설계한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장은 “국제공항과 항만, 산업 클러스터가 어우러진 인천은 상하이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신했다. 밀라노의 모든 전시회와 박람회를 주관하는 세계 최대 업체 피에라밀라노가 도시엑스포를 조직하는 소프트웨어를 맡겠다고 나섰다.

한반도의 관문인 인천이 글로벌시티로 뜨면 메가시티 서울도 같이 발전한다. 수도권 경쟁력이 앞에서 끌어 줘야 우리 경제도 펄펄 날 수 있다. ‘도시의 시대’라는 21세기를 시대착오적 이념에 파묻을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글로벌시티로 키워야 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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