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양]떠나는 인재 붙잡으려면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코멘트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초석은 정치적 암흑기라는 1980년대 초반에 놓였다. 삼성, 현대, LG의 총수는 투자를 결정한 후 가장 먼저 미국으로 가서 한국 전문가를 유치했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에서 핵심적 기술 개발을 주도하던 10여 명의 과학기술자가 먼저 귀국했다. 이들 덕분에 반도체 산업이 조기에 성공했다. 정부도 재벌을 돕던 시절이어서 규제 없이 연구 개발과 상품 개발이 가능했다. 효율적 자본 투자, 핵심 인력 및 기술력의 확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20년쯤 알고 지내던 지인이 직장을 그만두고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떠난다고 해서 저녁을 같이했다. 봉급이 파격적이었다. 출국하기 10일 전쯤에는 회사에서 두 팀을 보냈다. 한 팀은 자녀의 전학, 본인의 은행 보험 자동차 등 생활과 관계된 문제를 해결했다. 다른 한 팀은 이사에 대한 모든 일을 책임져 여행하듯 비행기만 타고 가면 불편하지 않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다고 했다.

요즘 중국은 베이징에 중관춘(中關村)이라는 기술개발 구역을 설정하고 회사와 연구소를 설립한 뒤 외국에 있던 인력을 귀국시키고 있다고 한다. 70만 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유학생 출신 석박사가 8500명에 이른다. 중국이 자본을 집중하고 핵심 인력을 모으고 제도적 뒷받침을 한다면 한국을 앞지를 날이 머지않음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반면 독일의 전문직들은 관료주의와 세금 압박 등으로 모국을 등진다는 소식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젊은 층은 농업 광업 공업에 종사하기보다 서비스 산업이나 편한 일에 종사하기를 더 원한다. 이공계 지원자와 핵심 기술을 가진 과학기술자가 줄었다. 이들이 외국에 있는 경우 30, 40년 전과 같이 애국심에 호소해 귀국시키는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하거나, 더 좋은 생활 및 연구 환경을 조성해 주는 곳으로 주저하지 않고 떠나는 과학기술자의 결정을 탓할 수 없다. 정부나 사회는 창의적 핵심 과학기술자가 보람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능력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 주거 교육 문화적 환경의 조성, 과학기술자와 전문 인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만이 이들의 발길을 다시 한국으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유럽에서는 과학기술 혁신사회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런 사회의 성공은 창의적 개인이 기존의 발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시도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러 분야의 지식이 모여 새 지식을 창출하는 일은 개인의 행위이다. 정부는 단지 창의적 개인을 육성하고, 규제를 없애 가는 것이 과학기술 혁신사회이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1947년 트랜지스터를 처음 발명한 미국의 세 과학자는 반도체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꾸고 21세기 초반에 한국이 반도체 생산과 판매에서 세계 제1의 국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인간과 교감하는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고, 세계 어디로든 통신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꿈의 사회를 만드는 일이 우리의 몫이다. 창의적 개인이 과학기술 분야에 지원하지 않거나, 연구 개발 환경 또는 제도에 한계를 느껴 한국을 떠나고 공장마저 하나씩 한국을 떠나면 텅 빈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국양 서울대 연구처장 물리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