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구자룡]‘카본 크레디트’의 허와 실

  • 입력 2007년 1월 22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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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지구촌 곳곳이 겨울을 잃었다.

스페인 북부 산악지대에서는 겨울잠을 자던 곰들이 벌써 깨어나 어슬렁거리고 다닌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안선이 바뀌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겨울을 봄으로 착각한 ‘철없는’ 나비와 제비가 날아다닌다. 이상 고온의 원인은 논란이 없지 않지만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 가스에 의한 지구 온난화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05년 2월 발효한 교토의정서는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의정서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선진 산업국 38개국은 2008∼2012년 자국 내에서 배출되는 한 해 평균 이산화탄소의 양을 1990년 대비 5.2% 줄이기로 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8% 줄이도록 했다.

이들은 긴 산업화 역사에서 ‘누적 배출량’(1850∼2000년 기준)이 많아 ‘대기오염의 역사적 빚’을 갚는 것이다. 미국은 연평균 배출량이나 누적 배출량이 가장 많지만 “경제적 타격이 크다”며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의정서는 특히 배출 가스 감축을 위해 ‘카본 크레디트(탄소 배출권)’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자국 내에서 줄이지 못하는 배출 가스의 양을 감축 의무가 없는 국가에서 대신 줄이되 그 양만큼 카본 크레디트를 사도록 했다. 지난해 1∼3분기에만 카본 크레디트의 세계 시장 규모는 215억 달러(약 20조 원)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래된 크레디트 중 중국이 60%가량을 팔았으며 유럽 국가와 기업들이 거래량의 80% 이상을 사갔다. 유럽에서는 온실 가스 탄소 1t을 줄이는 데 6∼7유로가 들지만 중국에서는 1유로가 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한 해 온실 가스 배출량은 미국(전 세계의 20.6%, 2004년 말 퓨센터 기후통계)에 이어 세계 두 번째(14.5%)다. 그런데도 중국은 배출 가스 감축 의무가 없어 크레디트를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일부 서방 언론은 중국이 교토의정서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카본 크레디트 거래가 배출 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은 매년 중국에서 날아오는 대기오염 물질 때문에 이런 저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배출 가스를 줄였다고 돈을 버는 시스템은 뭔가 문제가 있다. 한국도 중국처럼 배출 가스 감축 의무가 없기는 하지만 ‘의무 면제국’ 지위 유지가 불안하다(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상엽 기후변화실장). 한국은 한 해 평균 온실 가스 배출량 순위(2004년)가 세계 10위인 데다 누적 배출량도 23위다.

그런데도 업계나 일부 정부 부처는 ‘의무 면제국’ 지위 연장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감축 의무를 지지 않아도 선진국이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 자동차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상품 수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EU는 최근 ‘신(新)에너지 전략’을 발표했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미국 의회도 배출 가스 규제 등에 적극적이다.

선잠에서 깬 곰의 큰 눈망울이 보내는 무서운 경고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구자룡 국제부 차장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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