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부동산 잊고 사는 한 해였으면…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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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지난해 국내 10대 뉴스의 첫 번째로 ‘미친 아파트 값’을 꼽았습니다. 자고 나면 치솟는 아파트 값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필자도 부동산 담당 데스크로서 폭주하는 부동산 뉴스에 묻혀 살았습니다.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값이 치솟자 정부는 3·30대책을 내놓아 재건축을 꽁꽁 묶었습니다. 그러자 재건축 대상이 아닌 아파트의 값이 뛰었습니다.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서울 은평뉴타운 등의 높은 분양가는 주변 집값을 올려놓았습니다. 일부 아파트 부녀회는 집값 담합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설익은’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해 투기를 수도권 전체로 확산시켰습니다. 연말에는 ‘반값 아파트’와 종합부동산세 논란이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하는 부동산 기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뛰는 집값, 전세금을 더 부추기지 않을까, 서민들의 박탈감을 자극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밤늦게까지 기사를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폭등, 대란(大亂), 로또, 광풍(狂風) 등 자극적인 표현은 최대한 걸러 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항의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집값 올랐다는 기사가 나가면 홧김에 “너희들은 어디 사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계약하러 갔는데 기사를 본 집주인이 ‘이 가격엔 못 팔겠다’고 한다”며 울먹이는 주부의 하소연에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중년 남성은 “재건축 안전 진단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왜 재건축 기사마다 우리 아파트를 들먹이느냐”고 따졌습니다. 언론에 오르내리면 재건축 통과가 어렵다는 겁니다.

종부세 기사는 ‘본전’도 못 찾기 일쑤였습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은 “집값 오른 게 죄냐? 나중에 떨어지면 낸 세금 돌려줄 거냐?”며 분노했고, 지방 독자들은 “그만 써라. 배 아파 못살겠다”고 푸념했습니다.

2007년에는 이런 항의 안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동산 기자가 기삿거리 찾기 힘든 1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쉽진 않아 보입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경제의 걸림돌로 대통령 선거 등 정치 변수를 꼽습니다. 정치권은 벌써 ‘득표의 극대화’를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장기 정책효과나 후유증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는 다시 대책을 보완하고 있다. 반드시 잡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수없이 되풀이한 얘기입니다. 애써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을 부인하는 대통령이 시장에 역행(逆行)하는 무리수를 둬 집값을 아예 하늘로 날려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한 경제 부처 장관은 신년사에서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불확실한 정치 여건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논리에 맞춰 일관성 있게 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시장원리를 벗어난 정책은 실패하고 만다는 게 지난 4년의 생생한 경험입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 말고는 정답이 없습니다.

새해엔 ‘깜짝 쇼’가 없기를 바랍니다. 부동산 잊고 사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경준 경제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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