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용린]‘학교폭력’ 어른들이 눈 부릅뜹시다

  • 입력 2006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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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동영상이 오늘날 학교 폭력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교복을 입은 15세의 여중생이 4명의 같은 반 친구에게서 집단폭행을 당하고, 그중 한 학생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맞는 학생은 폭행의 아픔보다도 사진촬영을 더 무서워하며 찍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인터넷에 올랐다. 피해 여학생은 사진의 유포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경찰에 불려 온 가해 학생 4명의 진술이 또한 충격적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1, 2학년 때는 더 심하게 애들을 때렸는데도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엔 왜 (일이) 커졌는지 모르겠다.”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내 남자 친구에게 끼어든 것 같아 친구들과 폭행하기로 합의했다.” “폭행하는 장면을 찍어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 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을 다른 친구에게 e메일로 전송했다.”

정부의 5개 부처가 합동으로 학교 폭력을 단속한 덕분이었던지 작년 한 해 학교 폭력은 멈칫해 보였다. 올해 학교 폭력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 초등학생과 여학생 피해가 늘어나고 폭력 장면을 촬영해서 피해자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이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 사이에 봄부터 나돌았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 민간단체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가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세 가지 뚜렷한 변화가 드러났다.

첫째, 초등학생의 학교 폭력 피해율이 고등학생(8%), 중학생(16.8%)보다 높은 17.8%로 나타나서 초등학교 4, 5, 6학년생이 학교 폭력의 주된 대상임을 보여 줬다.

둘째, 여학생 폭력의 증가 추세가 뚜렷해졌다. 여학생의 폭력 경험(피해) 비율이 1999년에는 4.4%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6년에는 13.9%로 7년 사이에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여학생 가해자는 5배 이상 급증했다.

셋째, 학교 폭력을 당하고 신고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2배 가까이 줄었다. 학교 폭력 미신고율이 1999년에는 25.6%였는데, 2006년에는 45.9%였다.

폭력의 피해 또는 가해 후유증은 어릴수록 심각해진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약한 초등학교 시기의 학교 폭력 경험은 피해자에게나 가해자에게나 발달장애를 일으키게 되고 정신적 상처를 준다. 여학생에게 있어서 폭력의 피해 및 가해 경험은 남학생에 비해서 후유증의 강도 및 심도가 크고 깊다. 평생을 부작용으로 힘들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 폭력은 대부분 목격자가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므로 누군가 신고만 해 준다면 다른 어느 범죄보다도 예방과 대책 수립이 손쉬울 것으로 판단된다. 불행하게도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신고를 극히 꺼린다. “창피하게 같은 또래에게 맞고 산다”는 자격지심이 사춘기의 학생들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신고해 보았자 소용없다”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도 크다. 피해자 신고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기성세대와 지역사회의 일치된 노력이 중요하다.

2005년에 대대적으로 전개된 5개 부처의 합동 노력이 학교 폭력을 줄이는 데 성공한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기성세대와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고 학교 폭력 예방에 나서면 학교폭력은 줄어든다. 지역사회에서 기성세대가 부릅뜬 눈으로 바라볼 때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할 엄두를 못 낸다. 그들도 아직은 여리고 순한 우리의 자녀이다. 그들이 방심해 폭행에 이끌리지 않도록 할 책임이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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