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북핵 해결, 정권 임기와 연계하라

  • 입력 2006년 12월 20일 2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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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포기하려고 핵을 만들어 놓았나요?”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어록(語錄) 가운데 가장 진실의 순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발언이다.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인 강석주가 지난달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한국 특파원을 비롯한 외국 기자들을 잠깐 만났을 때 한 말이다. 단순 명확한 표현이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누구나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포기하려고 만든 핵 아니다

강석주가 누구인가. 1994년 10월 북한의 수석대표로 ‘제네바 북-미 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에게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해 2차 북핵 위기의 출발을 알린 사람도 그였다. 1987년부터 외무성의 수석차관격인 제1부상으로 일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국의 VIP와 만날 때 단독으로 배석하는 북한 정권의 실세이기도 하다. 북한 핵에 대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핵 관련 발언을 예사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강석주가 공항에서 한 다른 발언은 현실로 확인됐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에 대해 그는 “회담은 곧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예고대로 6자회담이 13개월만에 재개됐다.

실제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핵군축회담을 해야 한다는 둥 핵보유국으로서의 기세가 등등하다. 하루 이틀 협상을 더 해 봐야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별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국민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생각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가. 적당히 ‘당근’을 안겨 주고 해결하려는 전략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4년 동안 그런 식으로 대응한 결과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지 않았는가. ‘남한판 벼랑 끝 전술’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마침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좋은 선례를 제시했다. 그는 2년 내에 북한 핵무기를 해체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09년 1월을 핵 해결의 시한으로 설정한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공개했다는 것은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경우의 책임까지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도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정말로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1년 남은 대통령 임기를 시한으로 설정하라. 정부가 시한을 설정해 제시하고 시한 내 해결이 안 되면 남북관계에 파국이 온다고 북한에 압력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몇 차례 협상에 참여했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다음 정권에 핵문제를 이대로 떠넘긴다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권이다.

지난주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당한 성과가 없을 경우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 단임제 대통령이어서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모른다며 넘어가기는 했지만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연봉을 걸고서라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총리 취임 전 정부가 여론 조작을 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시 관방장관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3개월치 총리 봉급을 국고에 반납했다. 북핵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대통령의 1년 연봉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연봉을 걸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 부하들이 대통령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치열하게 북한 압박에 나서지 않겠는가.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 직전에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정부는 북핵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여겨야 한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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