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음주 외교관의 국적(國籍)

  • 입력 2006년 12월 14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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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이던 경찰관들은 단속을 피해 골목으로 우회하는 외교관 번호판을 단 승용차를 발견했다. 경찰은 달려가 승용차를 세운 뒤 운전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자신이 중국 외교관이라면서 면책특권을 내세워 차문조차 열어 주지 않았다. 양측은 8시간이나 승강이를 계속했다. 결국 외교통상부가 주한 중국대사관과 ‘외교적 협상’을 해서 운전자의 신원을 간접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음주 측정은 끝내 못했다.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교사절단의 공관과 공문서 및 개인 서류와 서신문을 불가침 특권 대상으로 규정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주재국의 형사 민사 행정 재판권과 증언 및 과세권도 면제된다. 그러나 협약은 ‘주재국 법령을 존중하는 것이 특권과 면제를 누리는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면책특권은 외교관 개인의 이익이나 특별대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만한 직무 수행을 돕기 위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인정하는 것이다.

▷외교관이라도 경찰의 신분증 요구나 음주측정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미국에서는 외교관이 음주운전을 하다 두 번 적발되면 국무부가 해당 공관에 출국 조치를 요구한다. 중국에서도 음주운전 단속 때 신분증을 보여 주고 음주 측정에 응하는 것은 외교관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중국 외교관이 버틴 것은, 미국에는 할 말을 다하면서도 중국엔 동북공정 같은 역사왜곡에 대해서까지 눈치나 보는 한국 정부를 은연중에 얕잡아 봤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누리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외교관이 자기네들이 대국(大國)이라고 한번 뻐겨 본 것” “미국 외교관이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차에 불을 지르고 촛불시위까지 벌였겠지.” “좌파 반미 시위단체들, 반중(反中)시위 좀 해 보세요”와 같은 글들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유독 주한미군이나 미국인에 대해서는 엄격하기 그지없어 작은 실수도 반미운동의 소재로 삼는 좌파 단체들의 답이 궁금하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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