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즈믄둥이 그 후

  • 입력 2006년 12월 12일 20시 52분


코멘트
서울 세종로 한복판 ‘우주 시계추’의 숫자가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던 순간을 기억하시는지? 그해, 새천년 환희 속에 태어난 즈믄둥이들이 내년에 벌써 초등 ‘학생’이 된다. ‘새천년 아기의 첫 울음은 대립과 갈등의 지난 1000년을 끊고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약속하는 최대 희망’이라는 축복을 받았던 그 아기들이다. 아이들 크는 건 잠깐이라던 옛 어른들 말씀이 새삼 실감난다.

▷새천년준비위원장를 맡았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새천년 첫 아기를 ‘즈믄둥이’라고 이름 짓고, 탄생 순간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하거나 세상에서 제일 큰 에어돔을 만든 나라도 있었지만 새천년의 순간을 생명 탄생으로 맞이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었다. 이 전 장관은 얼마 전 “사실은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에 태어나는 2000여 갓난아기 중에서 가능하면 가장 평균적이고도 한국적인 아기가 공인(公認) 즈믄둥이가 되길 바라서다.

▷2000년 1월 1일 0시 0분 01초 경기 안양시에서 태어난 태웅이는 정말 한국적인 부모를 둔 평균적 남자아기였다. 첫돌을 앞두고 기자가 찾아오자 ‘바른생활 아빠’는 “운이 좋아 즈믄둥이가 됐지만 우리 애가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뤄 인정받기 바란다”며 처음엔 인터뷰를 사양했다. 첫새벽만 해도 희망에 벅찼던 그는 아기가 백일도 되기 전에 외환위기 충격을 못 견딘 회사에서 명예퇴직했다. 그 후 1년도 안 돼 벤처 붐과 거품 붕괴 등 사회의 빛과 어둠을 겪어야 했다.

▷모두가 새 꿈에 부풀었던 그해엔 전년보다 2만1000여 명이나 많은 63만7000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은 부모 욕심도 만만찮아 서울지역 국립 및 사립초등학교 경쟁률은 예년보다 높은 2.2 대 1이다. 서울대사범대부설초등학교는 무려 21.8 대 1을 기록했다. 살면서 맞닥뜨릴 경쟁도 치열하겠지만 그만큼 총체적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도 옥수수처럼 잘도 큰 즈믄둥이들이 있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