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수능 끝! 교육도 끝?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해에는 ‘수다(수능 본 사람 다 모여라) 마케팅’이 뜨더니 올해엔 ‘특공’이란 말이 유행이다. ‘특공’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수험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특별공연’을 말한다. 수험생은 ‘고생증명서’(수험표)만 보여 주면 대폭 할인된 가격에 밥 먹고 옷 사 입고, MP3플레이어와 디카도 사고, 영화와 연극까지 즐길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한 당신, 이젠 즐기라’는 상술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수험생은 그만한 대접을 받고도 남을 만하다.

교육이 사라지는 황량한 고3 교실

문제는 학교 밖이 아니라 학교 안이다. 수능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될 때까지 한 달가량 고3 교실에서 교육은 사라진다. 모든 욕구를 억제해 가며 오로지 수능에만 매달려 온 아이들은 수능이 끝나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시 교과서를 펴라는 것은 잔인하다. 해 봤자 소용도 없다.

그래서 학교는 편법을 동원한다. 시간표만 그럴듯하게 짜 놓고 실제로는 대충 때우다 집으로 돌려보내는 곳이 허다하다. 졸업에 필요한 교육 시간을 채우려면 그 수밖에 없다. 교육 당국도 눈감아 준다.

그러나 전인교육이니 인성교육이니 하는 말만 나오면 입시교육 탓을 하며 손사래를 치던 학교가 막상 한 달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

지원하려는 대학에 맞춰 논술 준비를 하는 수험생은 고3 재학생 57만여 명의 3분의 1 정도인 18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줘야 한다. 학교, 대학, 교육 당국, 지역사회가 노력하면 가능하다.

학교는 다양한 ‘수능 후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일부 학교는 교양강좌, 박물관 견학, 산행, 영화 관람, 미용강좌, 직업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나물에 그 밥 식’ 프로그램은 소용이 없다. 진이 빠진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흥미, 실용, 체험 중 하나는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일거리가 늘어나 괴롭다는 학교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하품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직무 유기다.

경남 김해시의 장유고교는 수능 전에 더 많이 가르치고 수능 후에는 덜 가르친다. 그래서 수능 후에는 ‘떳떳하게’ 하루 4시간만 수업한다. 그리고 그 시간도 대부분 아이들이 원하는 진로 탐색, 진학설명회, 개인 활동으로 돌린다. 교사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불만은 없다고 한다.

한양대부속여고는 수능 후에는 가능하면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짠다. 집에서 곧바로 유적지나 박물관, 청소년수련원으로 가도록 한다. 돈이 드는 프로그램은 설문조사로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유관 기관의 협조를 얻어내느라 힘은 들지만 학교에서 할 일 없이 얼굴만 쳐다보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이미 진학 대학을 결정한 수시 합격생은 대학에서 껴안아야 한다. 3주 정도의 예비 대학생 코스를 만들어 영어나 컴퓨터 교육, 교양 교육 등을 시켜 주면 좋을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수험생을 데려오려고 애걸복걸하다가 막상 합격하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속 보인다.

흥미 실용 체험의 프로그램 제공해야

교육 당국은 수능 후의 학교 운영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 교육은 늘 필요가 먼저였고 제도는 나중이었다. 필요하다면 규정을 바꿔서라도 학교의 다양한 시도를 인정하고 권장해야 한다. 수능 후 교육과정을 학교의 평가항목에 포함시키고 우수 사례를 공모해 전파해야 한다. 상까지 주면 더 좋다. 그러면 일선 고교의 이중시간표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스쿨(school·학교)이라는 말이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서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능 후 한 달의 여가를 실속 있게 운영하는 데 학교의 역량을 기울여 볼 만하다. 대학진학률을 높이는 것만이 역량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