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덴마크 모델

  • 입력 2006년 11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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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만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사람을 지금보다 10배는 더 고용할 겁니다.” 국내 굴지의 자산운용회사 회장의 말이다. 간신히 취업한 내가 해고될지 모른다면 결사반대할 일이다. 반면 일자리가 급한 내가 보기엔 회사와 잘 안 맞는 누군가가 떠나 주면 나도 좋고, 회사도 좋고, 그 사람도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최근 방한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도 자국의 명예를 걸고 말했다. “해고를 쉽게 했더니 고용이 더 늘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2년간 세계의 노동정책을 분석한 결과 노동시장에 유연성(flexibility)이 있어야 일자리가 는다고 했다. 덴마크는 노동유연성에다 실업자에게 산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을 재교육해 재취업하게 만드는 고용 안정(job security)정책을 결합시켰다. 유연안정성(flexicurity) 덕에 실업자 셋 중 한 명은 1년 안에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 그래서 실업률이 30년 이래 가장 낮은 4.5%다.

▷‘스웨덴 모델’ ‘네덜란드 모델’ 하며 한물간 모델만 찾던 청와대도 드디어 덴마크 모델에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유연안정성과 재교육정책이라는 ‘새 모델’ 대신, 라스무센 총리가 줄이느라고 줄였지만 아직도 상당한 세금과 비대한 공공부문 등 ‘옛 모델’을 본뜰까 걱정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덴마크 모델이 매력적이어도 노사 간 신뢰가 없는 나라에서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스무센 총리는 “노사 협상은 자율적으로 합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사 정부가 개입한다 해도 큰 틀을 짜는 정도다. 덴마크 정부는 복지에 마냥 기대려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 실업급여를 깎고 민간부문을 활성화해 올해 3만4000개의 일자리를 늘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4월 부산고용안정센터를 방문해 고용 지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직업상담원에게 공무원 신분을 주든지, 공단을 만들어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거다. 민간 일자리 아닌 세금 먹는 공공부문만 늘리는 건 ‘얼치기 모델’쯤 될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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