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여성과학도의 생존 비법…‘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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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과학전문기자인 지나 콜라타(왼쪽)를 인터뷰하는 학생들. 사진 제공 황금가지
미국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과학전문기자인 지나 콜라타(왼쪽)를 인터뷰하는 학생들. 사진 제공 황금가지
여성 이공학도들이 성공한 여성 과학자 7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을 펴냈다. 성공한 과학자들도 20년 전에는 학생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멘터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본 학생들의 꿈이 녹아 있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여성 이공학도들이 성공한 여성 과학자 7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을 펴냈다. 성공한 과학자들도 20년 전에는 학생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멘터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본 학생들의 꿈이 녹아 있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안여림 등 지음/390쪽·1만5000원·사이언스북스

《올가을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화두였지만 딱 3년 전 이맘때는 ‘이공계의 위기’가 화두였다. 소위 일류 대학을 나와도, 한때 상류사회의 ‘보증수표’였던 미국 유학을 다녀와도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자리가 없어 시간강사나 입시학원 강사를 전전하는 이공대 박사들의 얘기가 연일 신문을 접수했다.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국감 자료에서는 치의학전문대학원 합격자 339명 가운데 108명이 서울대 이공대 출신이었다. 김도연 서울대 공과대 학장에 따르면 “신입생 중 20%가 의대 한의대 진학을 위해 휴학이나 자퇴를 한다”고 한다. 이제 순수 과학 연구는 불안한 미래와 동의어가 돼가는 걸까.》

‘Simple×Natural = Survive’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살아야 살아남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불안한 미래를 택한 이공대 전공자이다. 가뜩이나 미래가 불투명한데 한 가지 짐을 더 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짐이다.

성과 위주로 평가되는 과학계라지만 여성 이공학도들에게 성(性)은 여전히 불편한 ‘핸디캡’이다. 술자리에서 남성들끼리 이루어지는 고급 정보 교환, 출산과 육아로 인한 학업 중단, 허드렛일만 시키는 남성 교수의 횡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 이들이 토해 내는 불만.

저자들은 이러한 불만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멘터’의 역할을 해 줄 성공한 여성 과학자들을 만난다. 화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가와이 마키(河合眞木) 일본 도쿄대 교수, 최장수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명자 열린우리당 의원, ‘뉴욕타임스’가 자랑하는 과학 전문 기자 지나 콜라타, 황우석 파동 수습으로 유명해진 노정혜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교수 등 7명이 그들.

지금은 성공했다지만 20년 전에는 저자들과 비슷한 처지였던 이들에게 뭐 특별한 것이 있었을까. 연구 활동 때문에 30년의 결혼 생활 중 2년만 남편과 같이 살았다는 가와이 마키 교수, 연구활동에 두 아이의 육아 및 시부모의 병수발을 해야 했던 김명자 의원, 대학원 시절 임신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던 노정혜 교수,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원이 아닌 비서로 오인 받았던 서은숙 교수 등 이들이 내놓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자 과학도로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들이 묵직하게 안겨진다.

이에 대해 성공한 과학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be simple(단순해져라)’.

서은숙 교수는 “여성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해지면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여전히 남녀 차별적 문화가 잔존하지만 과학계는 역시 실적 중심이라는 것. 지나 콜라타 기자 역시 “이제 남녀 간의 차이를 만드는 환경적인 요인은 별로 없다”며 주눅 들지 말 것을 조언한다. 노정혜 교수의 인생관은 ‘단순하고 자연스럽게(natural) 살자’다.

그러나 역시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어렸을 때부터 공부가 좋았고, 공부하고 싶으면 고민 없이 ‘질러’ 버렸던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공부를 계속 하니까 잘 풀리더라. 그러니 장래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에는 마냥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시대를 살아갔으며 해외 유학파가 적었던 시기의 그들과 현재의 과학도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여성 과학도가 만난 여성 과학자라는 ‘신선한’ 기획도 ‘양날의 검’. 학생들은 인터뷰 내내 들뜨고 얼어 있다.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묻지 못했다’거나 ‘과학자의 열정을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을까’ 등 그들의 업적과 지명도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지나치게 상대의 눈치를 본다거나 감탄조의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독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부분이 있다.

이들의 불평처럼 이 책에 나온 여성 과학자들은 그 분야에서 독보적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많다. 읽는 독자를 일반 대중으로 생각했다면 좀 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 책처럼 ‘과학을 해서 행복한’ 메시지를 쉽고 진솔하게 전달하는 서적도 드물 것 같다. 학생 특유의 열정, 감성, 고민 등이 인터뷰에 녹아 있다는 것도 이 책의 특별한 장점. ‘과학’, ‘여성’이라는 화두를 빼도 성공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책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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