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칼럼]南정권이 더 걱정이다

  • 입력 2006년 10월 19일 20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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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김정일은 닮은 점이 많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북한은 자위(自衛)를 위해 핵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한미연합사령부는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한 준연구원이 홍콩의 인터넷신문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내용도 심하다 싶지만 김정일과 우리나라 대통령이 비교되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과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건 더 불쾌하다. 두 사람 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고, 대다수의 지지를 못 받는 지도자라는 점도 비슷하다.

親北反美는 주사파 핵심코드

대체 왜 ‘결과적으로’ 같은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전쟁만은 막기 위한 충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걸 군대 안 가 본 나도 안다. 민족주의에 불타서라면 제 백성 굶기는 북한 정권이 아니라 굶주린 주민 편에 서야 옳다. 개혁 개방을 권하는 측근에게 김정일이 “나보고 죽으란 말이냐”고 했다는 전언이 있다. 김정일이 있는 한 퍼 준다고 변화할 북한이 아님을 모른다면 순진하거나 무능하고, 알고도 감춘다면 죄질이 나쁘다.

노 대통령의 남다른 성격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전쟁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엘리트 군인은 위험을 알고도 대담하게 나서지만, 사이코로 분류되는 그룹은 위험을 느끼지 못해 뛰어든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과 평창 수해를 동렬에 놓고 비교했다. 그래도 현 상황의 엄중함은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과 신념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했다. ‘주류세력 교체’를 외치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정책부터 한글을 계급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개혁정치의 결정판으로 인식하는 것까지 이해가 된다. 그래도 북한 붕괴보다 북핵이 낫다고 본다면 좌파이념만으론 설명하기가 힘들다.

‘자주성은 인민대중의 생명인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을 때 한반도에서 자주적 정부로서 역할을 하겠느냐.’

어딘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 문장은 9월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자주정치에 관한 보도이고, 뒤 문장은 7월 8일 노 대통령이 연합뉴스 회견에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과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강조하는 것을 사시(斜視)로 볼 순 없다. 하지만 김일성이 과거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자주평화통일에서 ‘자주’란 남한에서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다는 미국 글로벌 시큐리티의 자료를 접하면 머리카락이 곧추선다. 전시작전권 단독행사는 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있는 북한의 오랜 숙원사업 아닌가.

위장 ‘민주화 세력’에 계속 속을 건가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主思派·NL파)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민중민주파(PD파)를 제압했다. 과거 주사파 최고지도부에 있던 한 인사는 “친북반미가 주사파의 핵심 코드”라고 했다. 친북은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반미는 미군이 철수해야 북의 남한 통제, 즉 적화통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집권 386’이 주사파 코드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봤다. 이들이 친북반미를 평화와 민족주의로 착각(또는 위장)하고, 국민은 이들을 민주화 세력으로 착각(또는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만 보 양보해서 주체사상으로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철저히 옹호(조선중앙통신의 표현)하고, 천만 보 양보해서 ‘분단 극복’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치자. 암만 그래도 제 백성은 굶어 죽는데 집권층은 산해진미를 즐기는 북을 향해 갈 수는 없다. 제 나라 실정을 제대로 몰라 불쌍하기는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다. ‘내재적 접근’으로 북을 알 만큼 안다면 이 나라를 그리 몰고 가는 정권이 김정일 정권보다 더 무섭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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