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공무원 또 늘립니까?

  • 입력 2006년 9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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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신(神)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던 인간은 이제 정부에서 모든 것을 구하려 한다. 허기를 채울 식량이 떨어진 사람은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정부에 소리쳐 댄다. 애인을 잃어버린 사람은 한강철교 위로 기어올라 도망간 애인을 찾아내라고 소리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를 제시해 보라고 정부를 윽박지른다.

정부가 할 일이 늘어만 간다. 인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정부의 역할이 확대된 예는 일찍이 없었다. 정부는 경제 관리는 물론 개인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종의 무한책임 회사가 되어 버렸다.

서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정부가 비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고자 급조된 대규모 공공조직이 전쟁이 끝난 뒤 사라지지 않았고, 사회복지 부문의 예산과 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됐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까지 정부의 팽창은 이런 각도에서 정당화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달라졌다. 정부의 팽창이 국민의 후생을 증진시키기는커녕 민간부문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됐다. 공무원을 늘리는 행위도 국민 복지보다는 공무원 복지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으로 굳어졌다. 공무원 수의 확대를 통한 승진 기회의 확대야말로 공무원이 추구하는 일차적인 욕망이라는 주장이다.

각국에서는 공공부문 축소와 공무원 감축이 시대적 물결을 형성했다. 영국과 미국이 이러한 개혁을 선창했고, 상대적으로 국가경쟁력이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경우 김대중 정부하에서 정부 축소와 개혁에 대한 요구가 가장 강력히 대두됐다. 정부 부처별로 획일적인 5% 감축을 시도했으나 하위직에 대한 감원 시늉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가 퇴장하자 오히려 정부 축소와 공무원 감축에 대한 반대 논리가 득세했다. 우리나라의 정부 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등장하자마자 정부의 축소를 포기하고 ‘일 잘하는 정부’를 구호로 내걸었다. 필요하면 공무원을 늘리는 대신 일을 더 잘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한나라당이 행정자치부에서 넘겨받아 25일 공개한 공무원 증원 계획에 여론은 차갑게 반응하고 있다. 각 부처가 2만2618명의 증원을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내년에 3230명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행자부는 밝혔다. 애초 47개 중앙행정기관은 5년 내로 12만9420명을 늘리고 9519명을 줄여 모두 11만9901명을 늘리겠다는 계획안을 행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국정홍보처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9개 부처와 기관은 5년간 1명도 줄이거나 재배치하겠다는 계획 없이 증원 계획만 제출했다. 행자부는 결국 인건비 예산증가율을 평균 7%로 추정해 5년간 5만 명 수준의 인력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언론과 인터넷의 댓글은 비판 일색이다. 무엇보다 부처의 수요 제기로 정부의 인력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의 인력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력 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혁신 주무 부처의 기본 사항이다. 국가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에 대한 전략적 기획 없이, 부처의 증원 욕심을 바탕으로 예산증가율 범위 내에서 증원하겠다는 사고는 안일한 발상이다. 개별적 부처 이기주의와 시각을 뛰어넘는 통찰과 리더십,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략적 비전을 보여 주는 일이 선행돼야 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건대 참여정부 초반에 형성된 공무원 증가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한국에서 지난 3년으로 끝난 듯하다. 정부의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에 대한 국민의 기대심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결과이다.

새로운 인력을 증원하기 전에 기존 인력의 재교육, 행정 과정의 단축, 부처 간 정보 공유, 집행기능 민간화를 통해 내부 혁신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공무원 스스로는 바삐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생산성 향상이 답보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내고, 내부 혁신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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