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늦어버린 질문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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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다섯 살의 칼럼니스트 헬렌 토머스 씨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은 조금은 뜬금없어 보였다.

“대통령,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가 뭐요?”

2006년 3월 21일의 백악관 기자실. 그날은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지 꼭 3년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날이었다. 비판적이라고 찍혀 부시 대통령에게서 3년여간 한번도 질문자로 선정되지 못한 토머스 씨가 모처럼 질문 기회를 얻은 날이기도 했다.

하루 지난 신문은 ‘생선 싸는 종이(fish wrap)’라고 불릴 정도로 속보 경쟁을 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백악관 출입만 45년째 해 온 토머스 씨였다. 그런 그가 시의성에 대한 감을 잃어서 이미 3년 전에 시작된 일을 두고 대통령에게 ‘진짜 이유가 뭐냐’고 캐물은 것은 아닐 터였다.

토머스 씨의 그 ‘철 지난’ 질문이 다시 떠오른 것은 지난달 29일 열린우리당 정동채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상임위원직을 사퇴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였다. 정 의원은 ‘바다이야기’가 게임 심의를 통과하고 경품용 상품권 발행이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탈바꿈하던 시기에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필자는 그렇게 문제가 곪아 가던 시절 문화부 출입기자였다.

문화부 직원들은 정 장관의 재임시절 그를 두고 “문화부를 다 꿰고 접수했다”고들 평했다. 취임 전 8년간 국회 문화관광위원을 맡아 문화부를 속속들이 알던 그였다.

그런 정 의원이 재임 기간 중 벌어진 일에 대해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여러 의혹이 곧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찍이 정 장관과 던지고 받았어야 할 질문과 답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기자가 해야 할 질문을 못하고 답을 얻지 못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1968년부터 1991년까지 23년간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을 지낸 벤 브래들리 씨는 1990년 한 인터뷰에서 “펜타곤 보고서가 1971년이 아니라 1967년에 보도됐더라면…”이라고 탄식했다. 그가 말한 펜타곤 보고서는 베트남전쟁이 미국에 불리한 국면으로 접어든 1963년,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베트남을 둘러본 뒤 전황이 기울었다는 것을 보고한 기밀문서였다. 문제는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맥나마라 장관이 문서에 담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모든 것이 잘되어 가고 있다”는 맥나마라 장관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는 마침내 ‘펜타곤 보고서’에 담긴 진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그 8년간 수많은 미국 젊은이가 이길 가망이 없는 이역만리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시 토머스 씨의 질문 장면으로 돌아가 본다. 그날 토머스 씨는 두 번쯤 반박과 재반박을 벌였지만 부시 대통령에게서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실망의 빛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홀대 받으면서도 백악관 출입을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부가 정보를 조작하려 하거나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기사”라고 말하곤 했던 그이니까….

박수 쳐 주는 사람도 없는 해묵은 일을 두고 왜 기자들이 때로 ‘하이에나’라는 비난을 들으며 끝을 알 수 없는 진실 게임을 벌이는지, 노 칼럼니스트가 주는 답이다.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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